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2021년도 예산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뒷북경제
총 558조원 규모의 내년 국가 예산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현금 살포를 통한 ‘포퓰리즘’ 논란이 거셌던 3차 재난지원금 예산이 예산심의 일정 후반부에 반영되며 최종 예산이 정부안 대비 2조2,000억원 늘었습니다. 국회 통과 예산이 정부안 대비 늘어난 것은 11년만입니다. 내년 국가 채무는 956조원까지 늘어납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령화 등으로 확장재정 기조가 계속되는데다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이 같은 채무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원화가치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고 상당 규모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역대 최대’ 예산이 매 예산 발표때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 본예산 당시 추정했던 채무(805조2,000억원) 대비 1년새 150조원 이상 급증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이 47.3%로 치솟게 됩니다. 올해 네차례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본예산 대비 41조7,000억원 늘어난 846조9,000억원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채무액은 1년새 100조원 이상 늘어 납니다. 이 같은 씀씀이를 지탱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93조2,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말그대로 ‘빚 잔치’네요.
국가 본예산 추이
이렇게 채무가 늘어나면 씀씀이의 효율이라도 높아져야 하는 데 예산 내역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우선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이 정부안 대비 5,000억원 늘었습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경제성 논란이 계속되는 ‘가덕도 신공항’ 관련 예산이 타당성 연구용역 명목으로 20억원 반영됐습니다. 김해 신공항 백지화 후 가덕도가 신공항으로 결정되지 여부도, 가덕도 특별법이 처리될 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따른 해당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결과입니다.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한 ‘세종 행정수도’ 관련 예산도 국회를 통과하며 대폭 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예산이 기존 10억원에서 127억2,700만원으로 증액됐습니다.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도 여전합니다.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172억원이,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112억원이, 월곶~판교 복선전철 사업은 120억원의 예산이 각각 순증됐습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개최 예산 6억5,000만원이 배정되는 등 ‘지역축제용’ 예산이 국회 심사과정에서 반영된 점도 눈에 띕니다.
언론에서 이 같은 지역구 챙기기 예산을 비난할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은 ‘우리 의원이 힘이 있구나’ 하고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의원들은 언론의 지역구 챙기기 관련 비판 기사를 되레 좋아합니다. 이번 기사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의원님’ 들의 출장 예산도 늘었습니다. 의원외교 활동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은 정부안 대비 20억원 늘어 95억1,400만원이 배정됐습니다. 국회 예산안만 보면 우리 국민들도 내년 해외여행이 어렵지 않을 듯 합니다.
예산이 이렇게 나눠먹기 식으로 배정되는 이유는 감액 보류사업과 증액 심사를 비공식 협의체인 ‘소소위’가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정부 예산을 깎거나 늘리는 작업은 예결위 예산소위에서 담당합니다. 예산 소위는 회의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예산이 어떻게 배정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예산소위는 지난달 6차례의 회의를 진행했지만 감액 심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으며, 관련 작업을 소소위에 넘겨버렸습니다.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각 1인이 참석하는 소소위는 비공식회의이기 때문에 회의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매번 예산안이 결정되면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 3차 확산에 따른 피해계층 지원을 위한 소요 3조원과 백신 추가 확보 예산 9,000억원 등 새로운 수요를 반영하다 보니 재정규모가 2조2,000억원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홍 부총리가 이야기한 ‘불가피’한 상황이 이제 그만 연출됐으면 합니다. 정치권에서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내년에도 ‘추경’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홍 부총리가 얼마만큼 ‘재정방어’를 해낼지 의문입니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