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 행위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21대 국회 들어 쏟아진 기업인 처벌 관련 법률들에 대해 이 같은 심정을 토로했다.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주요 상임위에서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신설하는 조항은 117개나 발의됐다. 6개 상임위(법사위·정무위·기재위·산업위·환노위·국토위)에서 발의된 법안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특히 정무위 소관 법률과 조항이 총 54개로 가장 많았다. 기업이 정치에 발목 잡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법사위(32개)와 환노위(31개)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해당 법률이 특정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보다는 사후적으로 징역과 벌금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징역 강화를 목적으로 한 법률들이 통과된다면 징역 기간은 현행 17년에서 33년으로 약 1.9배 늘어나게 된다. 신설된 징역은 69년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합하면 최대 102년의 징역 기간이 늘어나 현행 대비 무려 6배 증가하게 된다.
벌금의 증가 폭은 더 크다. 강화되는 벌금은 현행 5억7,000만원에서 11억8,000만원으로 약 2.1배 증가하고 신설된 벌금은 약 2,054억4,000만원에 달했다. 법안이 모두 통과된다면 벌금은 약 2,066억2,000만원으로 현행 대비 362배 증가한다.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휘청거릴 수 있는 규모의 벌금액이다.
과징금도 마찬가지다. 6대 상임위에 발의된 법안이 모두 통과될 경우 과징금 상한의 합산은 기업 매출액을 기준으로 현행 최대 35%에서 87%로 약 2.5배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징금은 정무위에서 15건으로 가장 많이 신설·강화됐는데 특히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에서 과징금을 일괄적으로 2배 상향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재계는 기업과 경영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로 인해 기업인들의 심리가 위축돼 기업 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이미 기업이 관련 법령을 위반할 경우 회사 전체의 경영이 마비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회사와 관련 업무 담당자뿐만 아니라 위반 행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영자도 함께 형사 처벌 대상에 오르는 ‘양벌 규정’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285개 경제 법률을 분석한 결과 2,657개의 처벌 항목 중 83%인 2,205개가 기업, 실무자, 최고경영자(CEO)를 동시에 처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에서는 과징금, 과태료 등 행정 처벌에 따른 조치를 통해 법령 위반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른 뒤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형사 처벌에 따른 진흙탕 싸움에 매진하다 기존 사업은 물론이고 신사업에 뛰어들 동력이 막힐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기존 법령으로도 실무자의 실수로 담당자뿐 아니라 회사의 CEO도 고발 대상이 되고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기존 악법을 완화하기는커녕 처벌 수위만 높이는 것은 해외에 비해 기업의 경쟁력을 뒷걸음질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