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희는 한국이 약세라는 500m를 포함해 쇼트트랙 전 종목에 걸쳐 올림픽 메달을 수집했다. 여자 쇼트트랙 올림픽 전 종목 메달 획득은 박승희가 한국 최초다. 지난 2014년에는 스케이트와 트랙, 쓰는 근육까지 쇼트트랙과 완전히 다른 스피드스케이팅(빙속)으로 전향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트랜스포머’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이렇게 선수 생활 내내 지치지 않고 활약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확실한 취미 생활이 큰 몫을 했다.
박승희는 “운동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쉴 때 집중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패션이었다”고 했다.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으로 시즌별 패션쇼를 다 챙겨 봤어요.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누군지 그때그때 업데이트도 하고요. 주말에 외박 받으면 쇼룸을 돌거나 기본적인 패턴 등을 배우러 다니느라 바빴죠.” 운동하는 동료들의 의상 ‘코디’로도 바빴던 박승희는 한 가방 브랜드의 공모 이벤트에 낸 디자인이 10여 개 당선작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선수촌에는 박승희 앞으로 배송되는 택배 상자가 유독 많았다. 대부분은 신진 디자이너의 패션 아이템들이었다. 선수촌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게 신기해 박승희의 이름을 기억해 둔 디자이너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였고 이는 은퇴 뒤 패션 업계에 뛰어들 때 많은 도움이 됐다. ‘멜로페’의 로고 디자인도 그렇게 알게 된 지인이 제작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이른바 ‘덕업일치(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덕질’과 직업이 일치)’의 삶을 살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 이옥경 씨는 3남매를 모두 국가 대표로 길러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는 박승희와 언니 박승주(빙속), 남동생 박세영(쇼트트랙)이 모두 출전해 화제가 됐다. 지금도 현역 선수인 남동생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면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는 박승희가 해설자로 동생의 경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머니 이 씨는 자녀들에게 ‘항상 스스로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했다. 슬럼프를 겪다 훌쩍 외국으로 떠나겠다던 딸에게도 걱정보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씨는 그때를 돌아보며 “뭐가 됐든 하나는 깨우치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스케이트를 신을 때 설레고 두근거렸던 박승희는 이제 누군가의 일부가 될 물건을 만들며 또 다른 설렘을 키워 가고 있다. 지금의 일이 가슴 뛰게 하는 일이냐는 물음에 경쾌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박승희의 눈이 반짝였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