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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주택 중개보수 산정체계’에 관한 국민 의견을 묻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공인중개사 협회 임원까지 나서서 집단 투표를 독려한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권익위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설문조사에 공무원들을 동원한 데 이어 이같은 여론전 양상이 또 나타나면서 오히려 권익위 설문조사가 여론을 왜곡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8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공인중개사협회 이사인 A씨는 권익위의 설문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달 7일 한 공인중개사 커뮤니티에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중개보수) 선택 요율을 무조건 높여야 한다”며 “우리들이 적극 참여해 정부의 정책 실패를 부각시키고 중개보수 요율의 타당성을 설득한다면 오히려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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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설문조사는 권익위가 지난 7일 발표한 ‘주택 중개보수 산정체계 개선’ 정책방안을 만들기 위한 사전조사 차원이었다. 권익위는 지난달 2일부터 13일까지 권익위 ‘국민생각함’에 이같은 설문조사를 게시해 △집값 상승에 따라 올라간 중개보수에 대한 의견 △6억 초과 9억 이하 주택의 적정 중개보수 요율 △9억 초고 주택의 적정 중개보수 요율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사 결과 총 응답자 2,478명 중 53%는 ‘집값 상승과 함께 중개보수가 크게 올라 중개료 부담이 과하다는 소비자들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참여자의 49.8%는 공인중개사, 50.2%는 일반 국민이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들의 투표 정황을 확인한 결과, 일부는 ‘일반 국민’으로 투표에 참여해 이같은 수치가 왜곡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설문참여자가 부동산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지’ 묻는 14번 문항을 거론하며 “회원님들이 어떻게 해야 될 지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저는 ‘아니오’ 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회원님들은 물론이고 지인과 가족분들을 총동원해 설문조사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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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공인중개사 B씨 역시 해당 커뮤니티에 “일반인들이 우리에게 유리한 의견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에 종사원들과 가족들도 참여시켜야 한다”며 “중개사들과 중개가족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독려의 글을 올렸다. 서울 지역 공인중개사 C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족 등 친지, 주변 분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우리 입장에서 설문에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촉구했다. A씨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협회 차원에서 투표 독려를 한 적이 없다”며 “공문이나 문자메시지가 내려간 것은 없다”고 전했다.
권익위가 앞서 실시한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정원 확대’ 여론조사에 이어 또 한 번 이해당사자들의 집단 참여 정황이 드러나면서 권익위 여론조사가 오히려 여론을 왜곡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익위는 지난 8월 공공의대 문제가 여론을 뜨겁게 달구자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을 물었다. 그러자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각 시군 및 출연기관에 공문을 배포해 “권익위의 설문 결과가 우리 도 핵심과제인 의과대학 설립 추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각 시군·출연기관에서는 ‘모든 직원’과 지인분들이 설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이해관계자들의 여론도 수렴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일반적인 여론조사가 아닌 실제 국민들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듣기 위한 것”이라며 “공인중개사 단체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렴해 종합적으로 제도 개선을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설문조사와 공인중개사 협회와의 정책 간담회 결과를 바탕으로 ‘중개보수 요율 산정체계 권고안’을 만들어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권익위는 △최고요율이 적용되는 9억원 초과 주택의 거래구간 세분화 △9억원 이상 거래구간에 적용되는 최고요율 인하 △현행 중개업으로 한정되어 있는 법정 중개서비스의 범위 확대 △상한요율제 폐지, 구간별 고정요율제로 전환 △전체구간 단일요율제 및 정액제 방식 검토 등 중개보수 산정체계 개선을 위한 5가지 원칙을 세우고 정책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