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차 지침 있으나마나...곳곳 '킥보드 방치'

지난 11월 가이드라인 마련에도
지자체 "실무 도움안돼"고충 토로
"보행 장애" 민원에도 대응 제각각
9월 발의 법률은 국회 문턱 못넘어

자전거도로 위에 주자돼 있는 한 공유 전동 킥보드.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돼온 킥보드는 자전거도로 위를 다닐 수 없음은 물론 주정차도 금지돼 있다./허진기자

킥보드 이용에 대한 새로운 제도를 담은 개정 도로교통법(도교법)이 10일부터 시행되지만 제도적 미비로 주정차 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이용 연령과 면허에 대한 우려를 수용해 보완 내용을 담은 재개정 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킥보드를 이용하고 난 뒤 어디에 어떻게 세우느냐에 대해서는 법적인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

1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교법은 만 13세 이상이면 면허증 없이도 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로 인해 교통사고 등의 우려가 제기되자 행정안전부, 경찰청, 공유 킥보드 운영사 등은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만 18세 이상만 공유 킥보드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기로 지난 11월 30일 일종의 자율적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또 국회는 9일 원동기 장치 면허 소지자에 한해서만 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교법 재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다만 재개정안은 4개월 뒤에야 시행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킥보드 주정차 관련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11월 초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공유 전동 킥보드 운영사, 지방자치단체, 유관 기관 등 관계자들을 모아 해커톤을 열어 킥보드 주정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마땅한 주정차 관련 지침조차 없는 상황에서 관리 당국인 각 지자체들이 관내 킥보드 관리에 어려움을 겪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지자체 일각에서는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상식 수준의 내용을 명문화한 것일 뿐 실무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지만 강제 권한이 생긴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일선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체감상 달라진 것은 솔직히 없다”고 답했다. 해커톤에서는 사용자 교육 방안 등도 논의됐지만 구체적 결론 없이 향후 과제로 남겨뒀다.

한 공유 전동 킥보드가 점자블록 위에 주차돼 있다. 지난 11월 초 마련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공간 위에는 킥보드 주차를 할 수 없다./허진기자

서울경제가 7~8일 서울 지역 내 킥보드 사용량이 많은 주요 지역들을 현장 취재해 보니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는 장소나 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상 주정차가 금지된 구역에 여전히 킥보드들이 방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생 이 모(23) 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킥보드를 타는데 보도나 도로 가에 방치된 킥보드 때문에 위험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해법 마련을 위한 입법 작업은 표류하고 있다. 주정차 관련 규정을 담은 ‘개인형 이동 수단의 관리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일명 PM법)’은 9월 발의된 후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은 지자체장에게 개인형 이동 수단의 주정차 금지 구역을 지정할 권한을 부여하며 운영사에는 이를 준수할 의무를 부과한다. 지자체는 의무를 위반하는 운영사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지자체들은 사실상 법 통과만 바라보는 분위기다. 송파구의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조례를 만들려고 해도 PM법이나 도교법에서 정해주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서 법 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입구에 주차된 공유 전동 킥보드/독자 제공

이렇다 보니 많게는 하루에 수건씩 밀려드는 주정차 관련 민원에 대한 대응법도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다. 서울 종로구의 경우 건설관리과에서 민원 처리를 맡았으나 현재는 운영사 측으로 민원 내용을 넘기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자체적으로 운영사들과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주정차 민원이 자주 제기되는 구역에 한해 운영사에 주차 불가 지역으로 지정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도교법상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없고 움직이는 킥보드를 적치물로 볼 수 없어 민원이 들어와도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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