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일각에서 글로벌 증시의 거품론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전기차 제조 업체 테슬라의 주가가 거침없는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투기적 열망이 끌어올린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만 이 같은 우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유동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따른 경기회복 가능성이 큰 만큼 증시가 당분간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는 팽배하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JP모건은 9일(현지 시간) 테슬라 실적과 비교해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면서 추격 매수를 피할 것을 투자자들에게 권고했다. 또 향후 12개월 목표 주가로 90달러를 제시해 8일 종가(649.88달러)와 비교했을 때 86%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날 JP모건 보고서와 기술주 중심 주가 하락이 맞물리면서 테슬라는 이날 6.99% 급락한 604.48달러에 마감했다.
JP모건은 보고서에서 “테슬라 주가는 모든 전통적인 지표의 잣대로 봤을 때 극적으로 과대평가됐다”고 진단했다. 테슬라의 시총은 이날 종가 기준 5,630억 달러(약 612조 원)로 자동차 경쟁사인 일본 도요타(약 254조 원), 독일 폭스바겐(약 103조 원)보다 훨씬 크지만 지난해 차 판매량은 40만 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같은 기간 총 2,180만 대를 팔았다. 지난 2년간 800% 이상 오른 테슬라 주가는 회사의 기초 여건과 상관없이 투자자들이 ‘투기적 열망’으로 끌어올린 결과라는 게 JP모건의 평가다.
특히 테슬라는 오는 21일 뉴욕 증시의 간판 지수인 대형주 위주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에 편입될 예정이어서 주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JP모건은 테슬라의 S&P 500 지수 편입을 앞두고 테슬라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들을 향해 주가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충고했다. JP모건의 이 같은 전망은 최근 다른 금융기관들과 대조된다. 지난 2일 골드만삭스는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기존 455달러에서 780달러로 대거 상향 조정했다. 테슬라에 대한 투자 의견도 기존 중립에서 매수로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전에 우리가 전망한 것보다 더욱 빠르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테슬라 주가의 거침 없는 질주는 글로벌 증시가 과열돼 있다는 대표적인 징후로도 거론된다.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 30 산업 평균 지수는 11월 이후 약 15% 올랐으며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약 12%, 약 13% 상승했다. 이를 두고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금융 버블을 세 차례 예측해 명성을 얻은 제러미 그랜덤 GMO 창립자는 “현재 시장은 ‘멜트업’ 장세에 있다”고 지적했다. 멜트업이란 거품이 끓어올라 마지막에 녹아 오르는 것처럼 가격이 폭등한 상태를 말한다. 그는 “지난여름부터 증시가 버블이라고 봤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진짜 광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투자자문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투자 심리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때처럼 격앙돼 있다”며 “주식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도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또한 미국의 정부 부채 문제를 지적하며 내년이나 내후년 증시 투매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아주 위험한 시간 안에 있다”며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월가에서는 천문학적인 유동성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개시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감에 증시가 계속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아직은 우세하다. 자산운용사 누빈의 브라이언 닉 최고 투자 전략가는 9일(현지 시간) “내년에는 백신이 최고 부양책”이라며 “코로나19 재확산에 V자 회복은 끝났지만 내년에 많은 이들이 백신을 맞게 되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면 경제는 로켓 형태로 회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증시는 새로운 강세장의 시작일 수 있다”며 “지금부터 (대규모 접종이 이뤄지는) 내년 6월까지 경제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월가에서는 S&P 500 지수가 내년에 4,000~4,5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이날 S&P 500 종가를 기준으로 하면 약 22.5% 더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내년에 미국 경제가 회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6개 투자 은행(IB)의 내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 중간값은 연 3.8%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회복하면서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가 뛸 수밖에 없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김기혁기자 뉴욕=김영필특파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