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오른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김종인 체제를 꾸린 뒤 얻은 첫 정기국회 성과가 ‘빈 수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여론전’에서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결국 원내 전략보다 선거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리더십의 한계라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권 내에서 김 위원장의 원내 전략이 결과적으로 21대 국회 입법 전쟁에서의 참패를 가져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개원 초기였던 지난 6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한 달 가까이 대치를 이어오던 야당은 김 위원장의 결단으로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당에 양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한 것은 1987년 12대 국회 후반기 이후 33년 만의 일이었다. 여당에 모든 권한을 넘기는 대신 차기 대선 등에서 권력 독주 및 무능론의 프레임을 씌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당시 결정이 ‘패착’이었다는 자성론이 나오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9일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된 기업 규제 3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정무위원장이 야당 몫이었다면 이번 회기 내에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개원 초기 원내 대표 협상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정무위·교육위·문화체육관광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환경노동위·국토교통위·예산결산특별위 등 7개 상임위원장을 양보겠다고 최후 제안을 한 바 있다. 두 법안은 법안소위와 공청회 등의 단계도 제대로 거치지 않아 통과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여당 소속인 정무위원장이 직권 상정 카드를 꺼내면서 극적으로 통과됐다.
아울러 기업 규제 3법의 경우 ‘미스터 경제민주화’로 불리는 김 위원장이 보수와 재계 등의 입장을 대표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에 지나치게 매몰돼 사실상 통과를 방조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기업 규제 3법은) 정기국회 회기 막판까지 당 지도부도 고민이 많았다”면서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당시의 기대감은 사라지고 이제는 “보수 정당을 재건할 사람이 아니라 선거 기술자만 데려왔다”는 날 선 비판도 내부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불만은 김 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극대화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중진인 한 의원은 “민주당 입법 독주에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이자 영남권 등 전통적인 보수 지지자들은 현 지도부가 ‘순한 맛’ 일색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수도권 중도층 표심 잡기에만 지나치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안팎의 비판에도 김 위원장은 선거 승패를 좌우할 중도층 민심을 얻으려면 “과거와의 결별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상당수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종인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갈등이 부상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김 위원장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여당에 주고 단 한 개의 위원장 자리도 받지 않았을 당시 ‘결국 (당에) 약이 될 것이다’고 했다”며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무기력한 국민의힘의 모습에서 확인했듯이 결국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돼서 돌아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선거 기술자로서의 역량’이 발휘될 내년 4월 보궐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당 핵심 관계자는 “현재 의석수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대응은 이슈 파이팅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최근만 해도 3차 재난지원금,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 여당보다 앞서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분야가 상당하다”며 “보수 정당 이미지를 쇄신하려면 당 외부의 전문가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김 위원장만 한 사람은 없다. 당내에 여러 불만이 있지만 아직은 더 믿고 가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진용·김혜린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