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영국인 의사 크리스토퍼 로슨 펜폴즈가 가족과 함께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로 이주해 ‘더 그랜지’라는 병원을 세웠다. 펜폴즈는 포도주에 다양한 의학적 효능이 있다고 판단해 집 근처 포도 농장에서 알코올 함량을 높인 와인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나눠줬다. 포도주 맛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병원은 진료를 받기보다는 와인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일 정도였다. 펜폴즈는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 제조 회사를 창업해 호주를 대표하는 와인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회사의 슬로건 ‘1844년부터 영원히’는 와인을 처방 약재로 사용하던 초기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펜폴즈 와인이 도약하는 과정에서 1940년대 수석 와인 제조자인 맥스 슈베르트의 역할이 컸다. 그는 유럽의 선진 기술을 배워오라는 특명을 받고 프랑스 보르도를 다녀온 뒤 장기 저장이 가능한 레드 와인을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가 오크통 제공을 거절하는 바람에 그는 미국산을 구해 쓰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가 1951년 내놓은 ‘펜폴즈 그랜지(Penfolds Grange)’는 뛰어난 품질과 맛을 자랑해 2001년 호주의 국가 문화재로 등재됐다. 호주 와인의 역사는 그랜지 탄생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그랜지 와인은 1962년 시드니 와인 박람회에 이어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와인 올림픽’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 호주의 ‘국보급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2018년 한 경매에서는 1951년산 그랜지 와인이 7만 8,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중국이 호주를 겨냥해 무역 보복에 나서면서 펜폴즈가 세계 반중(反中) 전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호주 와인에 최대 212%에 달하는 반덤핑관세를 매기자 세계 각국에서 ‘자유 와인’으로 명명된 호주 와인 마시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의회도 중국 투자에 제동을 거는 등 쉽게 굴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직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로서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도 이제는 중국 눈치만 보지 말고 국익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해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