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가 14일 서울 마포구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극단적 진영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고 지적했다. /오승현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민주주의 정신은 사라지고 편법과 날치기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입법 폭주’가 일상화하고 있다. 전체 300석 중 174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은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를 일삼으며 분열과 혐오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한국 정치 연구의 권위자인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정치학)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원인과 해결 방안 등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14일 서울 마포구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 정치에 대해 “포용의 정치가 아니라 배제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면서 “극단적 진영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고 짚었다. 그는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집권당은 무조건 정부를 지지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여당의 입법 독주를 “민주주의의 이름을 내걸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 독재’이자 절대 권력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인인 ‘문(文)주주의’로 치닫고 있다”고 꼬집었다.
-요즘 한국의 정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혼돈(chaos)’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195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학자로 변신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소용돌이(vortex) 정치’로 규정했다. 극단·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 쏠림 현상이 지속됐다. 그 뒤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소용돌이 정치는 갈수록 강화되는 양상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건가.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려면 3C 가치가 정착돼야 한다.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의 ‘3C 정치’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3C가 잘 이뤄진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역동적 정치가 된다. 반면 3P 정치로 치달으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Populism), 양극화(Polarization), 힘에만 의존(Power-oriented)’ 등 추악한 3P 정치가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개혁 대 반개혁’ 등 극단적 진영 논리에 빠져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의 권력 구조 운영 형태는 매우 기형적이다. 내각제적으로 대통령제를 운영한다. 집권당은 무조건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결의 원칙(majority rule)’은 작동하는 반면 소수자 권리 보호는 무시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수결 원칙만 신성시하는데 잘못 운영하면 독단·독재로 갈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절차와 과정이 아름다워야 성취된다. 그런데 여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만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위선’이다.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40%대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12월 들어 30% 후반대로 급락하고 있는데.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보자. 집권 1년차 2·4분기에 83%까지 올라갔던 YS 지지율은 4년차 4·4분기에 20%대로 내려앉더니 5년차 4·4분기에는 6%까지 수직 낙하했다. 지지율 급락의 결정적 계기는 집권 4년차인 1996년 12월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파동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의 4년차 2·4분기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갤럽이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5%가량이었다. 하지만 최근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집권 3년 6개월이 지나고 나면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가 14일 서울 마포구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원칙은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주의적 원칙만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승현기자
-공수처법 강행 처리가 민심 악화에 불을 붙인 격인데.
△권력기관 개혁을 얘기하면서 반개혁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모순적이다. 검찰 개혁 주장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함께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동시에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검찰의 독립성은 뒷전으로 돌리고 민주적 통제만 내세운다. 민주적 통제를 위해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상징적 행위가 공수처 출범이라면 공수처에 대한 통제 방안은 무엇인가. 당초 여당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제거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얘기하면서 공수처에는 민주적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상호 모순 아닌가. 결국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수처는 견제 장치가 없는 초헌법적 괴물이 될 수 있다.
-현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비롯한 여러 정책에서 무능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바둑으로 따지면 9급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스스로 9단이라고 생각하는 격이다. 적어도 전문성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야 하는데 실력도 경험도 없는 사람들을 쓰다 보니 더 망가지는 것 아닌가. 스물 네 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는 것은 정책적 무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정권 교체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를 살짝 넘긴 수준인데 그게 정상이다. 2016년 탄핵 정국 이전까지 문재인 후보가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선두권이었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20%대 박스권에서 수년간 머물렀다. 하지만 지금 야당에서 언급되는 차기 대선 후보는 올드 보이 일색이다. 새로운 인물이 거의 없다. 보수 야당에서 새 인물이 부상하려면 정권 교체 후 10년가량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더구나 유권자 지형이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유권자의 지형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다는 건가.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51.6%를 득표했고 문재인 후보는 48.0%를 얻었다. 주목할 점은 2040세대 대 5060세대의 유권자 대결 지형이 형성된 마지막 선거였다는 것이다. 2016년 이후 네 번의 선거에서 야당이 졌는데 이는 2040 대 5060의 유권자 지형이 2050 대 6070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유권자들은 386그룹인데 1960년생이 올해 60세가 됐다.
-이런 유권자 지형이 공고해질 것으로 보는가.
△아직은 여당에 유리한 구조다. 그런데 최근 추이를 보면 20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들의 이념 성향은 진보가 아니다. ‘이남자(20대 남자)’층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30%에 못 미치기도 한다. 그나마 ‘이여자(20대 여자)’가 버텨줬는데 이마저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부동산 실정으로 집값은 물론 전월셋값이 급등하면서 30대가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 50대의 경우 이중적 인지 구조를 갖고 있다. 386세대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연령 효과와 세대 효과가 중첩된 양상이다. 20대와 50대에서 흔들리기 때문에 야당은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새 비전을 제시하면서 ‘대깨문’이 아니라 ‘새로움(New)’을 계속 추구한다는 의미를 지닌 ‘대깨뉴’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가 14일 서울 마포구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무기력한 야당이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는 방법은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선거를 흥행시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승현기자
-야당이 집권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 경선제) 도입을 통해 흥행을 일으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 지지율로 시작해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안철수든 황교안이든 유승민이든 다 들어오고 김종인도 나오라는 거다. 여기에 윤석열도 나오고 싶으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국민 참여 경선에서 승리하며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일종의 혁신 플랫폼을 통해 새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김 비대위원장의 역할인데 자꾸 뺄셈 정치를 하는 게 문제다. 쟤는 안 되고 얘는 안 되고 하는 식으로 배제의 정치를 하지 말고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문호를 열어 열린 경쟁 구도 속에서 단일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 새 후보들을 대거 참여시키고 국민의힘은 발전적 해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 주자로 나설 가능성은.
△국민들이 윤 총장을 지지하는 것은 그의 일관성 때문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하면서 저항하니까 국민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더욱 주시할 점은 윤 총장 지지율은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최고 권력자의 후광에 기대어 쌓은 지지율은 허상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지지율은 견고하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유지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 정치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은 권력에 항거하고 투쟁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지지를 보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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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 아이오와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명지대 교양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선거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국회 제도개혁자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