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벤제프 대표./오승현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친 올해 골프장은 ‘단군 이래 최악의 예약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수를 누렸다. 해외 원정 골퍼들이 국내 골프장에 몰리고 밀폐된 공간이 아닌 야외에서 레저 활동이 가능해 국내 골프 수요가 늘어난데다 ‘골린이(골프+어린이)’까지 합세하면서 골프웨어 브랜드들이 덩달아 호황을 맞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돼온 골프에 20~30대 여성들이 입문하면서 골프웨어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매년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 골퍼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벤제프’가 눈길을 끈다. 벤제프는 젊은 신규 고객이 5~10%가량 증가하는 등 지난해 대비 10~15%의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벤제프는 올해로 창업 10년째를 맞았다.
스페인어로 ‘축복’과 ‘리더’라는 뜻을 가진 벤제프의 오너는 연예인 사업가로 이름난 정준호 대표다. 그는 벤제프를 비롯해 웨딩 업체 ‘해피엔젤라’, 빅데이터 기반의 소상공인을 위한 플랫폼 서비스 등 4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로부터 연기·사업·사랑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10년 이상 사업이 지속 가능했던 것은 방송과 비즈니스에 각각 100의 비중을 뒀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로, 지분으로, 이름 하나로 성공한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모든 사업체를 자비로 설립했고 책임을 묻는 등기이사로서 대표직을 수행해온 것이 주효했죠. 그런 가운데서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반드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제가 살아가는 이유를 확인합니다.”
●연기파 배우 넘어 실력파 CEO로
‘인디안’ 모델하며 박순호 회장과 인연
패션·유통 배워 10년째 골프웨어 사업
코로나 뚫고 올 두자릿수 성장 눈앞
‘연기파 배우’와 ‘실력파 최고경영자(CEO)’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동시에 갖기는 쉽지 않다. 연예인 사업가들의 비즈니스 스토리는 “누구한테 당했다”거나 “다 빼앗겼다”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거나 부업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방송 활동과 비즈니스는 오른팔·왼팔과 같습니다. 각각 100%씩 올인할 때 양손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어요. 방송이든 사업이든 부업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저는 사업에 관심을 가진 연예인들에게 ‘성공하려면 내 돈을 들여 대표이사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투자받는 법부터 증자가 뭔지도 알아야 하고, 문제 발생 시 법적 대응까지 책임질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죠.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야 해요. 원칙이 있는 사람은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나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정준호 벤제프 대표. /오승현기자
정 대표를 현재의 성공한 사업가의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벤제프다. 골프웨어와의 인연은 지난 2002~2011년 세정그룹의 골프 의류 브랜드 ‘인디안’ 모델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순호 세정 회장은 그를 일반 모델이 아닌 친자식처럼 여겼다. 정 대표는 팬 사인회가 열리는 매장 전역을 박 회장과 함께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낸 덕에 K패션 1세대 박 회장으로부터 패션업과 유통의 ABC를 배웠다. 기획부터 해외 공장 운영, 원단 수입, 봉제까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패션업의 가이드라인을 모두 익히게 된 것이다. 그는 “중국 시장을 보고 골프웨어에 뛰어들었다. 중국 출장을 자주 가니 중국 골프 산업이 급성장하는 것을 봤다. 10억 명이 넘는 중국인 중 1%만 골프를 해도 이 시장은 무궁무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8년 이상 골프웨어를 수없이 입어보고 연출하고 패션 시스템을 배우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10년 미국 브랜드 ‘플레이보이 골프’의 운영권을 맡으며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플레이보이 골프는 30~40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당시 골프 시장에는 없던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디자인을 제안해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정 대표는 중국·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해 2014년 벤제프를 탄생시켰다.
벤제프는 골프장이 아닌 일상에서도 패셔니스타들이 입을 수 있는 복합적 기능의 골프웨어를 지향한다. “일부 골프의류가 라벨만 다를 뿐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벤제프는 스타일·컬러·원단·디자인을 시즌마다 새로 선보이고 제가 디자인에도 참여해요. 골프장에서 골프 잘 치는 사람보다 옷 잘 입는 사람이 더 튀거든요. 골프라는 스포츠는 몸의 움직임이 많잖아요. 기능성 원단을 이용해 가장 가볍게 만들면서도 몸의 라인을 살려주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에요.”
정 대표는 30년 넘는 골프 구력을 자랑한다. 배구 선수 출신이던 그는 20세 때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골프공을 만졌다. 건장한 그의 체구를 칭찬했던 골프장 프로로부터 ‘골프 신동’ 소리를 들어가며 공짜 레슨을 받기도 했다. 정 대표는 “기초를 너무 ‘빡세게’ 배워 지금도 80대 타수를 칠 정도로 골프를 즐긴다”며 “운동·사회생활·인생 등 어느 분야에서든지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 뭐든지 고되게 배워놓으면 술술 풀린다”고 강조했다.
●사업 근간이 된 ‘밥상머리 교육’
훈장 방불케 하는 할아버지에게
유치원 때부터 술 예절·신뢰 배워
‘수입 절반은 남 위해’ 가르침 실천
충남 예산 출신인 정 대표는 ‘경주 정씨 양경공파 교리공 자손가’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 청학동 훈장을 방불케 하는 조부로부터 그야말로 충청도 양반식 밥상머리 예절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저는 술 예절을 유치원 때 배웠습니다. 호되게 익힌 덕분에 술기운에 실수 한 번 한 적이 없고 사람들을 끝까지 챙기고 마무리하는 게 일상이 됐죠. 또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남자들끼리만 따로 차려진 집안의 최상단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어요. 그야말로 VIP 테이블에서 어르신들에게 학교도 가기 전에 예법을 배운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 휴대폰에 저장된 8,000명의 지인 리스트 중 시니어들이 60%에 달해요. 할아버지로부터 또 배운 것은 ‘네 호주머니에 돈이 1만 원 있으면 항상 5,000원은 남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직한 생활로 신뢰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가훈과 함께지요. 밥상머리 교육은 지금 제 모든 사업의 근간을 이룹니다.”
●웨딩업체·빅데이터 플랫폼까지
수천개 맞춤 동영상 직접 찍으며
국내외 결혼·돌잔치 고객 사로잡아
소상공인 성공 돕는 무료 앱도 준비
정 대표는 부산 서면 더샵에 둥지를 튼 부산 최대 웨딩 업체 해피엔젤라에 큰 애정을 보였다. 그는 해피엔젤라에서 결혼·돌·회갑연을 하는 고객을 위해 수천 개의 맞춤 동영상을 직접 찍어왔다. 화면을 통해 눈에 익은 셀럽이 가족 구성원처럼 축하 인사를 하는 서비스는 전적으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애초에는 돈을 벌고 싶어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떻게 하면 해피엔젤라를 찾아준 고객들께 감사를 전하고 사랑받는 업체가 되며 350명의 직원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간절해졌죠. 내가 잘하는 것은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이니 이를 영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인도네시아·필리핀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올 정도가 됐지요. 지금은 코로나19로 가장 어려운 시기지만 소규모 행사와 이벤트로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최근 760만 명의 중소 상공인들,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해 2,000만 명의 회원을 타깃으로 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소상공인 사업자들을 상대로 카카오톡과 비슷한 무료 앱을 배포해 충분한 규모의 회원을 확보한 후 창업을 위한 물품부터 식자재, 생필품, 금융 상품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이 같은 사업자 기반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 상권 분석, 프랜차이즈 트렌드, 매장 재방문율, 매출 분석 등 비즈니스 컨설팅도 기획하고 있다.
이렇게 뼛속부터 사업가 기질을 타고 난 정 대표는 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다양한 역할을 통해 여러 인생을 대리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욕심 많은’ 그는 배역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또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삶을 살려면 사업가로서의 성공이 뒷받침돼 재정적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워낙 좋아한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료 연예인을 돕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정 대표는 현재 연예인 봉사 단체인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멤버다. “사회도 인생도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와 같더라고요. 내게서 나간 만큼 돌아오더군요. 그래서 내가 주인공일 때 나를 빛내준 동료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박수를 받는 내 생일은 365일 중 하루지만 나머지 364일은 남을 위해 박수를 쳐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많은 동료 연예인들 덕분에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됐으니까요.”
정 대표가 ‘돈을 버는 이유’는 이처럼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이미 수입의 절반이 경조사비다. 1년에 보내는 화환만 1,000개. ‘남자는 1만 원을 갖고 있으면 5,000원을 남을 위해 써야 한다’는 조부의 가르침을 자로 잰 듯 실천하며 사는 셈이다. 그는 경조사비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마케팅 비용이라고 설파했다. 화환을 얼마나 보냈는지 몰라 어느 날 들른 매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화환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는 “친한 동생들이 부탁해 모르는 곳에도 보내다 보니 이런 에피소드도 생겼다”며 웃었다.
정 대표는 여전히 방송 활동으로도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MBN의 시니어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오래 살고 볼 일’ MC로 활동 중이며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서도 열연하고 있다. 영화 ‘두사부일체’ 출연진이 의기투합해 이를 2021년 트렌드에 맞게 재구성한 영화 ‘히트맨 2’도 내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심희정 라이프스타일 전문기자 yvette@sedaily.com
He is… △1969년 충남 예산 △2007년 경희대 연극영화학 학사 △2004년 하와이 하와이아나호텔 사장 △2007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문화콘텐츠학 졸업 △2009년 통일부·코리아그랜드세일 홍보대사 △2010년 해피하와이 설립 △2010년 플레이보이 골프 론칭 △2010년 프랑스 쥐라드 와인 기사 작위 △2011년 해피엔젤라 설립 △2014년 벤제프 론칭 △2016년 아울컴퍼니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