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부의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6일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를 의결하자 법조계에서는 “결정 과정상 누구도 승복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징계위는 기피 신청 등 윤 총장 측의 요청을 번번이 기각했다. 대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증인 지정을 철회하는 등 마치 짜놓은 각본대로 ‘정직 2개월’이라는 결론을 냈다. 게다가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진행으로 검찰청법상 보장된 ‘2년 검찰총장 임기제’도 크게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최근 한 달새 윤 총장 직무를 두 차례나 정지하는 등 ‘나쁜 선례’를 남긴 탓이다. 앞으로도 정권에 반할 경우 언제든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징계위는 일방적인 회의 진행으로 총장 직무에 제동을 거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총장 부재로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 등이 표류하는 결과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연이은 기각·거부…‘일방통행’ 징계위=이날 열린 징계위는 출발부터 심상찮았다. 윤 총장 측은 회의 시작과 동시에 위원장 직무대행인 정한중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대해 기피를 신청했다. 정 직무대행의 경우 윤 총장의 징계사유인 ‘정치적 중립성 위반’에 대해 예단해왔고 정부 법무공단 이사로 재직한다는 이유였다. 신 부장에 대해선 또 다른 윤 총장 징계 사유인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KBS 기자와 통화한 사람으로 최근 지목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징계위는 두 위원 다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16일 새벽 윤석열 검찰총장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를 마친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가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과천=연합뉴스
‘판사사찰 의혹 문건’ 관련 핵심 인물인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증인 채택도 돌연 취소됐다. 그가 진술서를 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윤 총장 측은 ‘심 국장 진술서에 탄핵할 부분이 많다’며 재차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계위가 사실상 윤 총장 측 질의를 막기 위해 증인 지정을 철회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윤 총장 측은 추 장관 등이 빠진 징계위원 3명 자리를 채워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거부됐다.
◇‘반쪽짜리’로 전락한 증인 심문…결국 멈춘 尹의 시계=징계위가 증인 심문 절차에 돌입했지만 과정은 석연찮았다. 윤 총장 측이 요청한 증인 7명 가운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정진웅 부장검사 2명은 불참했다. 증인 채택이 돌연 취소된 심 국장까지 포함하면 8명 가운데 3명이 증인 심문 과정에서 제외됐다. 윤 총장 운명을 결정하는 징계위 증인 심문이 불출석·철회로 시작부터 ‘반쪽짜리’로 전락한 것이다.
16일 새벽 윤석열 검찰총장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를 마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과천=연합뉴스
다만 증인 심문의 속도는 빨랐다. 법관 정보 수집 문건을 작성한 수사정보정책관실 책임자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부터 시작해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을 마지막으로 대략 6시간 정도 만에 종료됐다. 1인당 1시간 정도의 시간이다. 이후 윤 총장 측은 ‘최종 의견 진술을 위해 징계위를 속행해야 한다’고 징계위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후 진술을 포기했다. 징계위는 징계 여부와 수위 등 토론에 들어갔으나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논의만 7시간 계속할 정도였다. 결국 징계위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 징계가 필요하다’고 내세운 6가지 사유 가운데 4개가 인정된다며 만장일치로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 징계 사유로 인정된 건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작성·배포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관련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 위신손상이다. 하지만 이들 징계 사유에 포함됐던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감찰 방해나 채널A 사건 감찰 관련 정보 유출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교류, 감찰에 관한 협조 의무 위반 등 감찰 불응은 징계 사유로 삼지 않는 게 타당하다고 인정돼 불문(不問) 결정했다. 징계위는 이날 심문 등 과정이 충분한 감찰기록 열람 등사, 심리기일 지정, 증인신문권 보장 등에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징계청구 이전 감찰조사 과정의 절차적 논란 사안이 징계청구 자체를 위법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날 징계위 심의나 결정 과정에 다소 의구심을 나타낸다. 정당성 논란을 일으킨 징계위원 구성은 물론 연이은 윤 총장 측 요구 거부 등 징계위 운영 과정에서 ‘밀어붙이기식’이나 짜 맞춰놓은 듯한 결론 도출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탓이다.
◇다음 수순은 ‘인사’…원전 수사 등 지휘부 노린다=법조계 안팎에서는 ‘정직 2개월’ 처분으로 윤 총장 손발을 묶은 다음 대대적 인사 단행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내년 1월께 예정된 인사를 대폭 앞당길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검찰 분위기를 바로 잡고 업무에 정진한다’는 명분으로 일선 검사부터 고검장까지 대대적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인사 칼날이 겨누어질 곳은 정권을 향한 수사를 진행 중인 간부들로 예상된다. 그중에선 월성 원전 의혹을 파헤치는 대전지검이 1순위로 꼽힌다. 대전지검 수사 지휘부를 대폭 물갈이함으로써 물꼬 트인 수사를 다시 옥죌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검장이나 차장·부장검사 등 지휘부가 교체될 경우 기존 자료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려 수사는 늦춰질 수 밖에 없다”며 “수사 방향 역시 새 지휘부가 다시 판단하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데 성공한 정권이 앞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조권형기자 과천=손구민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