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내 어머니의 마지막 말


“나는 니가 못 올 줄 알았다.” 북부병원에 계실 때 하신 말이다. 병실을 들어서자 이리 말씀하셨다. 평시와 비슷한 시간에 갔건만 이리 말씀하셔서 의아했다. 엄마는 이날 따라 내가 오는 걸 더 기다리셨던 걸까. ‘못 올 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언젠가는 엄마를 못 찾아갈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박희병, ‘엄마의 마지막 말들, 2020년 창비 펴냄)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알츠하이머성 인지 저하증과 말기 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약 1년간 ‘휴업’을 했다. 어머니는 많은 날들을 혼몽한 가운데 혼잣말처럼 한숨처럼 바람처럼 몇 마디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세상의 인문학을 공부해왔던 박 교수는 ‘어머니의 말’들을 받아 쓰고 그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별난 말, 어려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잘만 잘 자면 회복되니라.” “밥은 묵었나.” “밥맛 없으면 물에 말아 무라.” “춥다, 옷 더 입어라.” “목도리하고 다니라.” 당신은 밥도 제대로 못 넘기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들의 의식주를 꼼꼼히 염려한다.

몸과 정신이 한꺼번에 사그라드는 이 혹독한 시절에도 어머니는 결코 아들을 압박하거나 독촉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의 마음속에는 “니가 못 올 줄 알았다”는 말이 깊이 박힌다. 기다리면서 기다리지 않는 마음, 아들이 혹 못 오더라도 실망하거나 탓하지 않겠다는 마음, 차라리 못 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더욱 애틋하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 살다 보면 반드시 지켜야 할 숱한 세상일의 약속과 마감들 속에서 가장 손쉽게 미뤄지곤 하는 것이 내 가족에 관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어머니에게 먼저 달려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날이 올 것이다. 맨날 듣던 그 지겨운 잔소리와 시답잖은 말들이 그립고 간절해 혼자 울먹일 날이 결국에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것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