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진실을 외면하는 공화당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코로나 위험성 거부하는 美 공화
'오바마케어' 괴담 찾기 혈안 등
트럼프 시절 이전부터 현실 부정
거짓말 탄로 나도 아랑곳 안해
바이든 승리도 결코 인정 안할것

폴 크루그먼

확실하게 패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속적인 시도는 재임 시 그가 했던 다른 많은 일들처럼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놀랍지는 않다. 그가 조용히 물러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트럼프의 위험한 망상을 전폭 지지하는 공화당의 태도다. 워싱턴포스트의 설문에 따르면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단지 27명만이 이번 선거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상당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지자를 자칭하는 유권자들의 3분의 2가 최근 실시된 로이터·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서 선거가 조작됐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의적인 거짓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공화당의 태도에 놀랄 이유가 없다.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불편한 사실을 마지막으로 수용한 때가 언제였나. 공화당이 진실을 다룰 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공화당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기 수개월 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미국인의 최대 사망 원인으로 떠올랐고 트럼프 주변의 측근 중 상당수가 감염됐음에도 그들은 이렇다 할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 부인과 선거 결과 불복은 최근 조지아주에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대규모 관중을 상대로 트럼프가 행한 연설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이 집회에서 트럼프는 주지사를 향해 조지아주의 선거 결과를 번복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트럼프의 백악관 사수 노력을 지휘하는 루디 줄리아니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입원했다.

공화당의 현실 부정은 2020년에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그렇다고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처음 싹이 튼 것도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 과학자 그룹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주장을 비롯해 기후변화에 대한 집단적 부인은 지난 몇 년간 공화당의 당파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빌 클린턴 부부에 대한 광적인 음모론 역시 지난 1990년대의 상당 부분에 걸쳐 우파의 주류에 의해 흡수됐다.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가 목격 중인 많은 것들의 전조였음에도 이미 반쯤 잊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바로 오바마케어의 성공적인 도입에 대한 공화당의 반응이다.


오바마케어는 공화당의 불길한 예측 속에 2014년 전면 시행됐다. 당시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로 인해 의료보험 비용이 치솟을 것이고 무보험자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고용 참사를 빚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추가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고용 창출이 이어지면서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매년 3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물론 법안 발의자들의 기대에 다소 못 미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오바마케어는 도입 직후부터 숱한 미국인에게 도움을 줬다. 반대 세력이 예언했던 참사 따위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화당 인사들 가운데 그들의 경고가 빗나갔음을 시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더 나은 계획을 내놓으려는 당 차원의 노력도 없었다. 대신 당 지도부는 그저 그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듯이 행동했다. 예를 들어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공화당의 존 베이너 의원은 건강보험 가입자 수가 줄었다고 주장했다. 3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음에도 젭 부시는 오바마케어가 경기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우겼다.

당시 우파 그룹들은 헬스 케어 괴담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그들의 노력은 오바마케어로 삶이 망가진 평범한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찾는 데 집중됐다. 물론 버락 오바마의 의료 개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은 주로 값싼 보험에 들었던 건강한 젊은이들이었다. 의료개혁법으로 정부 보조를 받기에는 수입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화당이 찾는 피해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눈이 빠지게 찾는 대상은 저렴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나이 든 근로 계층 미국인들이었다.

공화당이 만들어낸 이런저런 괴담들은 금방 거짓임이 탄로가 났다. 그러나 공화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공화당은 트럼프 시절 이전에 이미 ‘탈진실’의 정치 시대로 진입했다.

결론은 이렇다. 일단 듣기를 원하지 않는 사실을 거부하는 버릇이 들면 언제가 그들이 거부하는 사실이 바로 선거 패배 시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공화당의 기후변화 부인과 트럼프의 버티기에 대한 당 차원의 지지는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

불편한 현실을 다루는 공화당의 전력은 과연 이 정당이 언제쯤 2020 대선의 합법적 승자가 바이든임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코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