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9주기를 맞아 북한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밝혔다./연합뉴스
새터민들 중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이 땅에 태어나서 자란 사람도 살기 쉽지 않은 곳이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이다. 정치·경제 등 모든 시스템이 다른 북녘에서 왔다면 삶은 더 팍팍할 수밖에 없다. 특히 두고 온 가족까지 있다면 힘들게 넘어온 남한을 등지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새터민 A씨의 상황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것보다 더 복잡했다. 그는 1972년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반복되는 경제적 어려움에 2011년 2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해 4개월 후 남한에 들어왔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A씨는 나름의 방법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2년 뒤 그의 남한에서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일이 벌어졌다.
A씨는 2013년 7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북한 보위부원으로 A씨의 한국 휴대전화 연락처를 입수해 발신한 것이었다. 보위부원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전을 보장 받고 싶다면 다시 돌아오라”고 A씨를 압박했다. 안 그래도 혼자 고향을 등진 상황에서 A씨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 살면서 A씨는 송금 브로커를 통해 북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힘들게 넘어온 남한을 다시 떠나는 ‘탈남’을 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3월 A씨는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일하면서 모은 600만 원에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받은 8,000만 원의 돈을 들고 출국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난 보위부는 A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당초 보위부는 그에게 무사 입북 조건으로 5,000만 원을 상납하라 했는데 현장에서 8,000만 원으로 금액을 올린 것이다. 상납 후 남은 돈을 북한 정착 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던 A씨는 반발했고 결국 북한행을 취소하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A씨를 기다린 것은 검찰의 기소였다. 북한 보위부는 그에게 남한으로 넘어간 다른 새터민들의 인적사항와 남한 기업들의 정보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공작에 동조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한 A씨의 사정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먼저 A씨의 행위를 유죄로 인정하며 “피고인 행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질적이 해악의 정도가 크지 않고 북한 보위부의 협박이라는 사정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협박성 회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 존립과 안전에 끼친 실질적 해악이 아주 큰 것으로 보이지 않고 탈출 시도에 그친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