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옥을 좋아하나요?

금민정 개인전, 스페이스소 20일까지
'바람의 자리' 한옥 소재 신작 10여점
첨단예술로 자연과 전통 한옥 들여다봐

금민정 ‘바람을 그리다’ /사진제공=스페이스소

천천히 열린 문이 느릿하게 닫힌다. 창호지 대신 유리를 끼운 근대기 한옥인지라 창을 통과한 햇빛에 잠시 눈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서서히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마루에서 바라본 방은 화가의 작업실이었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근대적 화단 형성을 이끈 고희동이 살던 국가등록문화재 제84호 서울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다. 이 집에 깊숙이 들어가 한참 머물며 작품을 만든 이는 미디어아티스트 금민정. 옛 사람이 살던 자리에서 그 곳만의 정서를 느껴 보았다.

금민정 ‘화가의 집_모서리’

기와지붕의 유려한 율동감, 대들보와 서까래의 듬직함, 격자 문살의 정갈함은 한옥 만의 매력이다. 바람 소리, 흙과 나무냄새, 햇살의 따스함 같은 잡히지 않는 경험은 한옥을 다시 찾게 만든다. 공간을 다루는 작가 금민정이 한옥의 경험을 소재로 감정과 정서를 포착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마포구 잔다리로의 스페이스소에서 2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바람의 자리’를 통해서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3.5m 길이의 대들보에 줄지어 걸린 12개의 LCD 모니터를 마주하게 된다. 담장과 기와를 보여주는 12개의 장면들은 같은 듯 다른 느낌이다. 한 곳에서 찍었지만 ‘감정’에 따라 달리 포착됐고 관객에게도 다르게 감지된다. 대들보는 실제 철거된 한옥에서 나온 목재다. 송희정 스페이스소 대표는 “불안한 듯 서 있는 구조이지만 12개의 모니터의 영상은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대조적인 듯 조화를 이룬다”면서 “원래의 쓰임과 역할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감수성과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의 결 그리고 감정값이 반영된 한옥의 풍경은 치유와 휴식의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소개했다. 첨단, 디지털, 기계문명 등을 떠올리게 하는 미디어아트로 전통, 아날로그, 무형의 가치 등을 보여주기에 참신한 작품들이다.

금민정의 ‘담 넘어, 12개의 풍경’(앞)과 ‘바람을 짓다’ /조상인기자

작가는 독창적으로 재료를 모색했다. 영상조각 ‘바람을 짓다’는 철거된 한옥에서 가져온 대들보와 서까래를 어긋나게 배치해 2개의 모니터를 설치했다. 자연에서 온 나무 재료와 한옥 풍경을 담은 영상이 처음부터 함께였던 양 잘 어우러진다. ‘화가의 집-바람 그림자’는 한옥에서 머물며 발견한 돈궤를 작업에 접목했다. 상자 형태로 가로 놓였던 돈궤를 세로로 세우니 마치 문처럼 여닫을 수 있게 됐고, 그 돈궤 덮개를 경계로 한옥 내 서로 다른 안팎 풍경이 펼쳐진다. 작품은 목재에 얇은 모니터를 부착한 것인데, 복잡한 장비 없이 USB를 꽂아 가동할 수 있다. 회화처럼 벽에 걸거나 책상 위에 놓을 수도 있다.

금민정 ‘화가의 집_바람 그림자’ /사진제공=스페이스소

10여 점의 작품 속에는 고희동 가옥 외에도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 북촌 한옥 락고재가 등장한다. 바닥으로 드리우는 그림자, 창살이 닫히는 모습,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 등이 작가가 느낀 ‘바람의 자리’를 공감하게 한다. 금 작가는 “우연하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에 의해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에 머물게 됐다”면서 “공교롭게도 그곳은 조선 시대 말기에 지어진 공간으로, 안방·건넌방 별채·정원의 정자 등이 그대로 존재하며 한국 전통의 건축적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 그것만이 지닌 아름다움과 시간성을 그대로 뽐내는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집은 사람이 살아가며 즐기기만 한 공간은 아니다”면서 “그 시대의 아픔과 변화, 역동하는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 작가는 “한옥의 시각적 요소에서 보이는 집의 감성을 떠올리면서 또한 그 시대를 상상해 봤다”면서 “근대 화가가 머물렀던 그 가옥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시대상보다, 작업실에 앉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세상과 작업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상상해 본다”고 되새겼다.

금민정 ‘바람을 짓다’

전시장 한켠에서는 작가가 관람객들의 ‘감정데이터 수집’을 위해 고안한 어플리케이션이 마련돼 있다. 한옥의 어떤 것을, 왜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감정의 종류와 깊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이런 감정들을 전자 신호화 하여 영상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슬픔, 우울, 연민, 경탄 등의 감정값이 입력돼 원래의 이미지를 뒤틀거나 흐릿하게 만들고 혹은 길게 늘어트리는 등 새로운 형상으로 변형시킨다. 주관적인 감정이 입력값으로 변환돼 만들어진 ‘마음의 풍경’이 작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만든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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