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서울시장 출사표를 또 던졌습니다. 2011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뒤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언론은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전날 국민의당 당직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가 공지된 뒤 다음날 공식 출마선언이 이뤄지자 언론은 속보와 해설기사 등을 쏟아냈습니다. 차기 대선 지지율 4.2%(11월 11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의 의원수 3명에 불과한 군소정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언론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였지만 안 대표는 언론이 주목할 만한 스토리를 가진 정치인이 틀림없습니다.
8년 정치 이력 '창당→합당→탈당→창당→합당→재창당'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17년 11월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경제민주화 출판기념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안 대표는 창당과 합당, 탈당과 재창당의 과정에 ‘멘토’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던 안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건 원로 즉 ‘멘토’들이었습니다. 안 대표는 이날 출마선언문을 통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은 하나 마나 할 것”이라며 “원로들이 ‘결자해지’라고 지적한 데 송구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안 대표가 후보직을 양보한 뒤 결국 이번 보궐선거까지 치러지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안심(安心)을 움직인 원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2014년 1월 새정치추진위원회에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새정치추진위원회에서 열린 인선 발표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당시 안철수 의원과 손을 맞잡고 있다./연합뉴스
안 대표의 첫 멘토는 누가 뭐라 해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입니다. 윤 전 장관은 안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청춘콘서트’의 전신 ‘안철수의 토크 콘서트’를 2010년 기획하면서 긴밀해집니다. 2013년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에서 윤 전 장관은 새정치추진위원장으로 합류했고, 2016년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11년 안 대표를 서울시장으로 만들려던 최 측근이 바로 윤 전 장관입니다. 이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안 대표의 멘토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안 대표에게 대권가도에 앞서 국회 진출을 권하기도 했지만 안 대표는 2012년 대선에 직행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는 모두 알듯 흔쾌하지 않았고 결국 현 여권은 대선에서 졌습니다. 이후 다시 정치를 시작한 안 대표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으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영입했습니다. 연구소장은 장하성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이었습니다. 이상돈 전 의원은 2016년 국민의당 창당과정에 합류를 하며 멘토로 부각됐습니다. 그는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국민의당의 녹색바람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2018년엔 손학규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있었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의 후원회장었던 최 명예교수가 연구소 이사장을 맡자, 일찌감치 ‘손학규-안철수 연대’가 전망되기도 했는데 실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였던 안 대표 곁을 지켰던 것은 손 전 대표였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2013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창립 계획을 발표 후 ‘내일’의 이사장을 맡은 최장집 명예교수(왼쪽 두번째)와 소장을 맡은 장하성 전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왼쪽 세번째)과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안 대표와 이들 원로 멘토들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을까요. 윤 전 장관은 “마라톤은 혼자 하는 거고 민주 정치는 같이 하는 것”이라며 안 대표와 거리 두기를 해 온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016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서 안 대표를 향해 “불리하니 밖으로 나간 사람”이라고 했고, 당시 국민의당을 창당한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을 “‘모두 까기’ 차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습니다. 윤 전 장관과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2011년 무작정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했다가 가족의 반대로 불출마하겠다고 물러선 것이라며 불편함을 꾸준히 드러냈습니다. 최장집 교수는 이사장직을 맡은 지 80일만에 사임했습니다. 최 교수가 ‘내일’ 이사장직을 맡아 ‘안철수 신당’의 진로에 대해 ‘노동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표방하자 당시 안 의원 측은 “최 교수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며 선을 그으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구소장이었던 장하성 전 본부장은 잘 알려진 것처럼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안 대표와 결별한지 오래입니다. 이상돈 전 의원은 최근에도 라디오에 출연해 “(안철수 대표가) 진정성도 없다고 본다. 과거에 안철수 대표와 뜻을 함께한 사람들까지 다 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습니다. 손학규 전 대표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국에 있던 안 대표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결국 “개인회사의 오너가 CEO를 해고 통보하는 듯 (재신임을 묻겠다)”고 해 결별 수순을 밟았습니다.
국민의당 이태규(왼쪽부터) 의원과 권은희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안 대표 곁에는 ‘원로’보다는 비교적 젊은 의원들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이태규 의원 등입니다. 안 대표에게 ‘결자해지’를 요청한 원로는 누구였을까요. 그동안 원로 멘토들과 소원해진 안 대표 곁을 지켜주는 원로가 전면에 등장할 때야 비로소 이번 서울시장 선거 출마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건 아닐까요. 2012년 정치 입문 직전에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안 대표는 정치를 하려는 이유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기억’에서 찾았습니다. “그렇게 무력한 사람들은 사회가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다” 안 대표가 원로의 지적을 전제로 ‘결자해지’를 주장하기보다 8년 전 품었던 ‘안철수의 생각’으로 ‘결자해지’를 강조했다면 어땠을 까요.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을 남을 것만 같습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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