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일찍 기로소 들어간 숙종...기사계첩 국보됐다

숙종이 59세에 기로소 들어간 행사
기념으로 그려 나눠가진 '기사계첩'
홍씨 문중서 300년 원형대로 전해져

국보 제334호로 지정된 기사계첩 중 기사사연도 장면. 숙종이 국가 원로원 격인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며 그린 화첩이다. /사진제공=문화재청

13세에 임금이 된 숙종(1661~1720)은 59세이던 1719(숙종 45)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직책을 가진 문관(文官)들을 우대하던 원로원 같은 성격의 기관이다.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가려면 10년 이상 남았지만, 앞서 태조 이성계가 70세 되기 전 60세에 들어간 사례를 따라 입소(入所)했다.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며 당시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를 조직해 만든 화첩이 ‘기사계첩(耆社契帖)’이다. 계첩은 보통 참석한 인원수대로 제작해 나눠 갖는 것이 풍습이었으니, 오늘날의 ‘기념사진’과 비슷하다.

문화재청이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300년 넘게 풍산홍씨 후손가에 전래된 ‘기사계첩 및 함’을 국보 제334호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행사는 1719년에 열렸으나 초상화를 그리는데 시간이 걸려 계첩은 1720년에 완성됐다. 기사계첩은 기로신(臣)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 경희궁 경현당(景賢堂) 사연(賜宴) 때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祝詩),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전하는 다른 ‘기사계첩’과 유사한 구성이다.


국보 제334호로 지정된 기사계첩 중 ‘경현당석연도’ 장면. /사진제공=문화재청

행사 그림은 경희궁 흥정당에서 기로소에 어첩을 봉안하러 가는 행렬인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이튿날인 2월 12일 기로신들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인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4월 18일 경현당에서 왕이 기로신들에게 베푼 연회 광경인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기로신들이 경현당 석연에서 하사받은 은배(銀盃)를 들고 기로소로 돌아가는 행렬인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계첩의 하이라이트 격인 기로신들이 기로소에서 연회를 행하는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로 구성돼 있다.

기사계첩은 박물관과 개인 소장 등 5건 정도가 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지난 2017년도부터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을 실시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지난해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고, 이번 건이 기사계첩의 두 번째 국보 지정이다.

홍만조 초상화. /사진제공=문화재청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의 다른 점은 ‘만퇴당장(晩退堂藏·만퇴당 소장)’,‘전가보장(傳家寶藏·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수록됐다는 것. 이 기록은 해당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1645~1725)에게 하사돼 경북 안동의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돼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 준다. 홍만조는 조선 숙종 때 학자이자 관료인데 1678년(숙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뒤 1693년 강화유수, 동왕 22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형조판서 등 여러 관직을 거친 인물이다.

국보 제334호로 지정된 기사계첩과 이를 보관하던 내함, 호갑, 의궤. /사진제공=문화재청

이 계첩은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으며, 이는 내함(內函), 호갑(護匣·싸개),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의 보호장치 덕분이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외궤에 넣는 방식이다. 이는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문화재청 측은 국보 제334호로 지정된 기사계첩 및 함에 대해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高宗)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다”면서 “기로신들의 친필 글씨와 높은 완성도와 화격(畵格)을 갖춘 그림이 현존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도 갖춘데다, 계첩과 동시기에 만들어진 함(내함, 호갑, 외궤) 역시 당시 왕실공예품 제작 기술에 대해서도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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