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 증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로 암울한 한 해를 예고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현실이 되자 지난 3월 말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일제히 2018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기술주를 중심으로 뉴욕 증시는 빠르게 회복하며 수차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기록적인 주가 상승에 전문가들은 2000년대 ‘닷컴 버블’의 재연 여부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2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례적인 주가 상승세를 근거로 또 한 번의 닷컴 버블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월 23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올해 최저점을 찍은 뒤 이달 22일까지 86% 상승했다. 1998년 10월부터 2000년 3월까지 거침없이 오르며 255%까지 급등하던 닷컴 버블 당시 주가 추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기업공개(IPO) 시장도 당시처럼 들썩이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미국 IPO 시장에 몰린 돈은 1,650억 달러(약 182조 원)로 1999년(1,070억 달러)의 기록을 넘어섰다. 특히 조달한 자금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기술 기업 IPO 10곳 중 3곳(스노플레이크·에어비앤비·도어대시)이 올해 이뤄지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20년 전처럼 개인 투자자 역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수수료 무료’를 내건 미국 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의 가입자 수는 코로나19 이후 약 300만 명 늘어난 1,300만 명에 달한다. 앞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실물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아니라 상승 랠리에서 소외돼 수익 창출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FOMO·Fear Of Missing Out)이 커지며 주식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거품이 꺼질 일만 남았을까. 전문가들은 현 상황은 20년 전과는 다르다는 입장에 가깝다.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는 기술 기업들이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나스닥지수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 영역이 확대되자 아마존과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미국 4대 기술 기업은 3·4분기 모두 월가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단순한 기대감으로 상장한 뒤 파산한 기업들이 줄을 이었던 20년 전의 나스닥지수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의미다.
닷컴 버블 당시와는 달리 현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공격적으로 돈을 풀고 있다. 16일 연준은 기준 금리를 동결한 것은 물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때까지 매달 1,200억 달러 상당의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연준의 계속되는 완화적 통화정책에 미국의 광의통화(M2)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3월 전년 대비 10.2% 증가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25.1%까지 늘었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이 주식시장이 과열됐다며 정책 금리를 인상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타결이 임박한 추가 경기 부양책도 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금 지급 규모를 늘려야 한다며 퇴짜를 놓았지만 어쨌든 의회가 이미 8,920억 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에 합의해 막대한 유동성 유입은 기정사실이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뉴욕에 있는 투자회사 스피어스아바커스의 분석가인 젭 브리스는 “상승장이 멈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며 “아직 고점이 아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