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지난 1994년 예언이 적중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계좌 개설, 송금이 가능해졌고 은행이 아닌 기관에서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영업점이라는 장소의 한계, 금융업이라는 업종의 장벽을 모두 뛰어넘는 ‘초(超)금융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으로 정의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금융업은 모든 한계를 넘어서며 혁신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로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때로는 그 범위가 지역과 국가마저 초월한다.
국내 시중은행의 경쟁자는 더 이상 국내외 금융사가 아니다. 금융과 DNA가 다른 네이버·카카오, 아마존·구글 등 빅테크 업체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경계의 대상이다. 신한은행은 8월 ‘미래 변화 보고서’에서 ‘아마존화됐다(Amazonized)’는 표현으로 아마존이 전자 상거래는 물론 오프라인 유통·금융까지 집어삼킨 현상을 경계했다. 포털 사이트로만 알던 네이버를 상대해야 하는 점도 우려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우리리서치플러스 8월호에서 카카오와 네이버의 금융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미 수차례 “우리의 경쟁자는 구글·아마존”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정보기술(IT) 기반의 빅테크 업체는 막강한 플랫폼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으며 전통 금융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가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핀테크 부문 성장이 최근 1년간 전체 사업 분야에서 가장 월등하다. 네이버의 핀테크 영업이익은 올 3·4분기 1,74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6%나 급증했다. 핀테크의 수익 비중도 같은 기간 9.5%에서 12.8%까지 늘었다.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페이증권 등 계열사로 나뉜 카카오 역시 기존 금융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가 일찌감치 금융 분야에 발을 내디뎠고 국내 시장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스마트폰과 PC를 제조하는 애플은 골드만삭스·마스터카드와 손잡고 애플카드를 출시했으며 구글은 씨티그룹·스탠퍼드연방신용조합(SFCU)과 협력해 구글페이를 내놓고 예금 계좌 개설, 간편 송금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아마존 역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중소기업 대출을 시작했다. 전자 상거래 업체로 시작한 알리바바도 대출·보험·자산관리 등 종합금융회사로 도약했다.
이병훈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성장·저금리 지속과 디지털 금융 확산, 핀테크·빅테크의 은행 산업 진출 확대로 은행권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경쟁은 강화됐다”며 “은행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