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외교통일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북핵 관련 발언을 두고 미국 전직 관리 등 현지 전문가들이 “북한에 동조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송 의원의 주장이 북한 관료들의 입장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부와 여권 관계자들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비판 여론을 두고 “한국의 특수성을 몰라서 나온 얘기들로 우리가 설득하면 된다”고 국민들에게 연일 장담하고 있지만, 자유·민주·인권 등을 향한 이질적 관점만 외려 더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지난 24일 이 매체에 “송 의원의 핵무기 발언은 핵확산금지조약의 노골적인 위반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됐던 북한 관리들의 주장과 놀랍게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이 지난 14일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찬반 토론에서 내놓은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송 의원이 북한에 동조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에 분명하고 실존적인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당시 “(미국은) 5,000개가 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북한과 이란에 핵을 가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불평등 조약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야당이 “북한 입장을 이해하자는 것이냐’고 비판하자 송 의원은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할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송 의원은 또 지난 21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비판한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의 성명에 반론을 제기하는 기고문을 싣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전단과 문화 자료, 현금을 담은 풍선을 띄우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입히거나 중대한 위협이 될 때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매콜 간사는 14일(현지시간) 미국 국영방송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성명을 내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며 “한반도의 밝은 미래는 북한이 한국과 같이 되는 데 달려 있지, 그 반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송 의원의 이 기고문을 두고도 “송 의원은 비평가들에게 이 법안이 12년에 걸친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과라고 믿게 하려 하지만, 현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 1부부장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통일부도 지난 15일 “이미 2008년 18대 국회 때부터 대북전단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며 국제사회의 지적을 똑같은 논리로 반박한 바 있다.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역시 지난 23일 이 매체에 “이 법안의 분명한 의도는 대북전단 풍선 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이라며 송 의원이 기고문에서 한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는 송 의원의 핵무기 발언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지난 2016년) 미국의 수도를 파괴하는 영상을 공개한 것은 미국에 분명한 위협이 됐다”며 “북한에 실제로 가용한 핵무기가 생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송 의원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반문했다. 또 천안함 폭침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의 이유 없는 과거 도발을 송 의원이 잊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은 28일 송 의원의 핵무기 발언을 두고 “미국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핵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도전(challenge)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분석관은 “북한 정권이 북한 인권문제의 근원”이라며 “북한 정권을 건재하도록 남겨두는 것은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 향상을 위해 피상적이고 허울뿐인 노력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이어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일부 미주 한인들은 최근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미 연방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보도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논란은 최근 한국 유력 인사들의 적극적인 대미 설득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한국 정부와 여권 인사들이 무언가를 주장하면 현지 전문가들이 이를 즉각 반박하는 상황이 연출되며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북한 인권단체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쉬먼 회장 역시 지난 22일(현지시간)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잘못 사용했으며 이에 대해 실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일부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 15일 ‘표현의 자유 침해’ 등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비판들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하면서 “거쉬먼 회장도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알린 내용에 대해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거쉬먼 회장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의 정당성을 주장한 서호 통일부 차관의 NK뉴스 기고문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은 오히려 반대 효과를 내 남북한 사이 분단의 벽을 강화할 수 있어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