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변리사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2차전지 분리막 소재업체인 더블유스코프가 일본 아사히카세이의 특허침해 소송에 대해 특허무효심판 청구를 낸 결과 최근 패소했다. 더블유스코프는 아사히카세이가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특허심판원은 기각 결정을 내려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10월9일자 13면 참조
이번 심판결과는 아사히카세이와 더블유스코프간 특허침해 소송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사히카세이는 더블유스코프가 2차전지용 분리막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조·판매 금지는 물론 손해배상도 청구해 놓고 있다. 더블유스코프가 소송에서 지면 소부장 기술 자립 전략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허법인 변리사는 “(특허심판원이) 아사히카세이의 2차전지 분리막 특허가 국내서도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향후 본안 소송에서 더블유스코프가 불리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2차 전지 시장은 매년 급성장 하고 있어 정부가 ‘소부장’ 육성을 통해 수입대체를 유도하려는 핵심 기술이다. 더블유스코프 사례처럼 일본이 기술침해를 이유로 무차별 특허소송을 가해 오면 국내 소부장 기업의 운신 폭도 그만큼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일본 기업들은 자사의 핵심기술에 대해 이중, 삼중의 특허를 걸어놓기로 유명해 마음만 먹으면 국내 소부장 기업을 상대로 언제든지 특허침해소송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대응은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 변리사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은 한일관계가 좋거나 시장침해의 정도가 크지 않으면 특허소송을 제기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양국 관계가 냉각되거나 (한국 소부장 기업들의 시장잠식이) 용인된 수준을 넘으면 언제든지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글로벌 분리막 1위인 아사히카세이는 지난해부터 한국과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에 점유율 2위로 내려 앉으면서 위기감이 커지자 더블유스코프에 대해 전격 소송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부장 육성을 위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삼성SDI가 국내 업체에 소싱을 확대한 게 아사히카세이가 더블유스코프를 견제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더블유스코프는 삼성SDI와 장기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SK머티리얼즈 연구원들이 경북 영주시 본사에 위치한 반도체 소재 통합분석센터에서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특수가스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사진제공=SK머터리얼즈
일부에서는 2차 전지나 반도체, 위성분야 등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급성장 할 경우 일본의 견제도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기술자립과 거래처 다변화가 중요해 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이 국내 소부장 기업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일본 기업들의 체감 위기감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엘오티베큠과 미코세라믹스 등 국내 ‘소부장’ 중소기업 6곳에 1,800억원을 투자했다. 대부분 일본 업체와 경쟁하는 관계다. 엘오티베큠이 개발하는 디스플레이·반도체 공정장비용 초고진공 터보분자펌프는 일본서 70%를 조달하고 있다. 미코세라믹스가 개발하는 반도체 장비용 세라믹 히터 역시 일본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특허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이 국내 소부장 기업들 상대로 무차별 특허침해 공세를 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부장 관련 특허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한국의 소부장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무차별 특허소송을 걸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특허권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중인 ‘K디스커버리(한국형 증거수집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일본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정차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더블유스코프의 특허법원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재판에도 다소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아직 확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최종 패소하더라도 판매 금지 여부나 손해배상액 산정이 어느정도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