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9일 9조3,000억원 규모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책을 공개했습니다. 우리국민 1명 당 19만원 가량을 지급받을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입니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3차 재난지원금으로도 알려진 이번 예산 규모에 대해 ‘예상보다 많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애초 관련 예산은 3조원 내외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며 국회에서 예산 지출 내역을 대략적으로 공개한 지난 27일까지만 해도 5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피해 확산 추이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공격적 예산 집행이 불가피 하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는 기존에 편성된 예산에다 목적 예비비 및 이월 예산 등을 활용해 적자국채 발행 없이도 예산을 마련했다며 재정건전성에 대한 문제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돈풀기가 결국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정부가 새해 벽두부터 대규모 재정을 풀어 비상상황에 대처할 여력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실제 정부는 이번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올해 예비비 예산에서 4조8,000억원을 꺼내쓰기로 했는데 이는 올해 총 목적예비비(7조원)의 69% 수준입니다.
예비비는 가계로 치면 혹시나 모를 비용지출에 대비해 마련해 놓은 일종의 ‘비상금’입니다. 국가재정법 22조는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 일반회계 예산총액의 100분의 1 이내의 금액을 예비비로 세입세출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예비비는 재해대책이나 원화 부족액 보전 등에 쓸 수 있는 목적예비비와 사용 용도에 제한이 없는 일반예비비로 나뉘며 올해 일반예비비 규모는 1조6,000억원입니다. 이에 따라 총 예비비 잔액은 3조8,000억원 규모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같은 예비비 잔액을 예로 들며 어느정도 재정 여력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2020년 본예산에 예비비 3조4,000억원을 확보한 것에 비하면 8조6,000억 정도를 2021년에 확보했기 때문에 이것을 쓰고도 당분간은 충분히 비상 소요에 대비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상황을 돌이켜 보면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지난해 59년만에 처음으로 네 차례 추경을 편성했으며 전체 추경 규모만 67조원입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 또한 2019년 39.8%에서 지난해 43.9%로 급증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비율을 47.3%로 전망하지만 지난해 추경 편성 사례 등을 감안하면 국가채무가 50%에 육박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전국민 대상 1차 재난지원금 살포에서도 보았듯이 ‘재정 포퓰리즘’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올해 추경 규모가 지난해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정부 또한 재정 건전성을 위해 세수를 늘리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22%→25%),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42%→45%),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 인상(3.2%→6.0%) 등 ‘부유층 핀셋 증세’로 사실상 증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세율 인상은 근로의욕 저하 및 탈세 유인 강화 등의 시장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정부의 ‘핀셋 증세’ 정책이 실제 세수 확보로 이어질 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불황에는 세금을 낮춰 민간 경기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과 같이 증세를 시도하는 ‘거꾸로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찍힙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3차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대로 전망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하면 달성이 쉽지 않아 보여 세수 확보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올해 예상 성장률이 지난해 마이너스로 돌아선 성장률(-1.1%)에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된 수치라는 점에서 올해 체감경기는 2019년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물론 전문가들 또한 지금과 같이 양극화가 심화되고 저소득층의 생계가 어려운 비상상황에서는 재정 확대라는 카드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다만 재정 집행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재정 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올해 코로나19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보다 현명한 대책을 기대해 봅니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