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유행이 좀체 멈출 줄 모르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논란도 더 거세지고 있다. 연말연시 방역강화 특별대책이 3일까지 예고된 가운데 정부는 2일 3단계 격상보다는 현 단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3단계는 사실상 ‘셧다운’의 의미를 지닌 만큼 경제적 충격이 만만찮아 이번에도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둘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까지는 우세하다. 다만 현 수도권 2.5단계에도 확진자 수가 줄지 않으면서 “차라리 선제적으로 3단계를 적용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백신 관련 소식은 오락가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통화해 2,000만 명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당초 실무를 지휘하는 정세균 국무총리나 방역당국에서 국민들에게 고지하지 않았던 ‘깜짝 뉴스’였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의료진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를, 2분기부터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모더나 등을 각각 접종할 수 있다고 대략적으로라도 알린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획이 현실화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그조차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백신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3단계에 닿을까 말까 한 수준에서, 국민 참여형으로 바뀐 ‘K-방역’에, 우리 모두 사활을 걸고 버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28일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앞서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3단계는 못 간 정부... 정세균 “‘국민 실천’이 더 중요”
정 총리는 지난달 27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현 수도권 2.5단계, 지방 2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그대로 연장했다. 이미 강화된 연말연시 방역강화 특별대책이 3일까지 이어진다는 점도 감안했다.
정 총리는 당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이미 우리가 이행하고 있는 특별대책에는 거리두기 3단계보다 더 강한 방역조치도 포함되어 있다”며 “이번 확산세 진정 여부의 열쇠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스스로 정한 방역수칙을 제대로 실천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고 강조했다. 28일에는 “지금까지 한 순간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이번 한 주는 확산과 진정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로”라며 “역학조사 결과 대부분은 사회활동이 활발한 40~50대가 먼저 감염된 후 가정 내로 전파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장년층이 일터 등에서 방역수칙을 빈틈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당부였다.
그러다 서울 동부구치소와 요양병원, 종교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멈추지 않자 같은 달 30일 “특별대책 기간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종료되는 이번 주말 이후의 방역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그 결정 시점을 1월2일로 예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8일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한 뒤 24일부터 연말연시 특별방역대책을 적용해 여행과 사적 모임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강화된 방역 조치에도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나드는 등 코로나19 확산세는 멈추지 않았고 정부에서는 연일 “최대 고비”라는 경고음이 나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구치소 집단감염’에 즉각 고개 숙인 丁, 뒷북 사과한 秋
일각에서는 정치인 출신이 워낙 많은 현 정부의 조직 특성상 장관급들이 방역에서도 정치적 행보를 의식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때 보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태도를 두고 뒷말이 나왔다.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교정시설에서 대규모의 집단감염이 발생된 데 대해 중대본부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법무부와 방역당국은 더 이상의 추가 발생이 없도록 비상 방역조치에 총력을 다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함께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 총리는 지난 25일 중대본 비공개회의에서도 관계자들에게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 사태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구치소에서 사망자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주무 부처인 법무부의 추 장관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추 장관이 국민 안전과 생명권과 관련된 불리한 사안은 피하고, 당장 민생에 영향도 없는 검찰 이슈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추 장관은 같은 날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해 특별사면과 복권 대상자를 직접 발표하는 공식 일정이 있었음에도 구치소 집단감염 관련 언급은 피했다. 이날 발표한 특사 대상자 가운데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과정에서 입건된 정치적 갈등 사건 관련 특사도 26명이 포함됐다.
공무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법무부 노동조합은 이에 31일 추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법무부는 비판 여론에 이날 부랴부랴 교정시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고 조치가 미흡했다고 사과했지만, 이는 추 장관이 아닌 이용구 차관이 했다. 추 장관은 해를 넘긴 1일에야 뒤늦게 페이스북에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고 적었다.
지난 29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브라이언 올굿 병원에서 주한미군 장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주한미군
국내 백신 접종 1호는 주한미군·카투사
그 사이 주한미군과 한국군 카투사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게 됐다는 소식은 국민들을 더 허탈하게 했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지난달 31일 공식 입장문에서 “한국 국적 의료인력인 카투사 병사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인 최초의 접종이었다.
주한미군은 지난달 25일 코로나19 백신 1차 보급물량을 미국 국방부로부터 전달받았다. 해당 백신은 같은 달 1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 승인(EUA)을 받은 모더나 제품으로 500여 명이 접종할 수 있는 1,000회 안팎의 분량이었다.
주한미군은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서 전날인 28일 우리 국방부에 카투사 백신 접종 문제 등과 관련한 협의를 공식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당초 카투사 등 한국인 접종은 보류해 달라고 미군 측에 요청했다가 하루 만에 접종 동의로 입장을 바꿨다.
정유진 방역대책본부 국제협력담당관은 “부작용 발생 등 안전성과는 별개로 카투사가 주한미군에 배속된 만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선택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접종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연합뉴스
노영민 “백신 접종 2월 시작”vs 정세균 “단정 못해”
코로나19로 거리두기의 고통을 국민들이 분담하는 가운데 백신 계획 역시 논란이 됐다.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의 말조차 엇갈렸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지난 27일 국회에서 가진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갑자기 백신 도입 시기에 대해 “내년 2월이면 의료진·고령자를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노 실장은 또 “세계 각국은 내년 2분기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할 예정인데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집단면역 형성 시점도 외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빠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는 이전보다 훨씬 구체화 된 백신 접종 시간표였다.
반면 정작 현장에서 백신 확보를 직접 지휘하는 정 총리는 옆자리에서 노 실장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구체적인 시점은 각 제약사의 생산 역량에 큰 영향을 받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가능한 이른 시기에 도입되도록 추가적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우리 정부의 백신 확보 노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뒤처진 게 아님을 강조했지만 도입 시기에 대한 관점에서는 분명 차이를 보였다.
정 총리는 그전에도 백신 도입 시기를 한 번도 월 단위까지 특정해 국민들에게 보고한 적이 없었다. 지난달 20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이) 1분기 언제라는 것은 특정이 안 돼 있다”며 “우리는 2월부터 시작하고 싶지만 3월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와 청와대는 최근 해외 백신 수급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해명을 내놓아 관심을 끈 바 있다. 정 총리는 20일 “정부가 백신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한 지난 7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그나마 정부의 오판을 에둘러 실토했다. 반면 청와대는 22일 “문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물량 확보에 대해 13번이나 지시했다”며 어떤 오판도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 모더나 CEO와 직접 통화... “백신 2,000만 명분 추가 확보”
노 실장이 보인 자신감의 배경은 이틀 뒤에 드러냈다. 문 대통령이 해외 백신 확보에 직접 나선 것이다. 이는 정 총리는 물론 방역당국에서도 암시하지 않았던 움직임이었다. 방역당국이 청와대가 먼저 발표할 때까지 비밀에 부쳤던 것인지, 아니면 아예 몰랐던 것인지 의문을 자아내는 깜짝 뉴스였다. “안전성을 우선했다”던 정부가 실제로는 비판 여론에 상당히 압박을 받고 있던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2,000만 명분(4,000만 회분)이 내년 2분기부터 국내에 공급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과 스테판 반셀 모더나 CEO가 전날 밤 화상 통화를 하고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모더나를 통해 공급되는 2,000만 명분의 백신은 당초 정부가 확보하려던 물량(1,000만 명분)보다 1,000만 명분이 더 늘어난 것이었다. 도입 시기도 기존 3분기에서 앞당겼다. 문 대통령과 반셀 CEO는 모더나 백신을 우리 제약사 등에서 위탁 생산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후 지난달 31일 모더나와 같은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앞서 아스트라제네카(1,000만 명분), 화이자(1,000만 명분), 얀센(600만 명분),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1,000만 명분)’ 등을 통해 총 3,600만 명분의 백신 계약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모더나 백신 계약이 완료되면서 총 5,6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한 것이다. 모더나 측도 5월부터 한국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나아가 국산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지난달 31일 정 총리는 셀트리온(068270)이 이틀 전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조건부로 허가해 달라고 신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 중인 백신도 내년 말쯤이면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선별 임시검사소. /연합뉴스
당분간 ‘국민참여 K-방역’ 연일 강조 속 ‘버티기’
백신 초기 물량 확보 시간표가 대략적으로 제시되면서 올해에도 당분간은 거리두기를 앞세운 방역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 역시 하루도 쉬지 않고 ‘K-방역’의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K-방역 시즌2-국민 참여 방역’에 국민들이 빠짐없이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 총리는 12월31일 코로나19 중대본 회의에서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막바지 최대 고비에 처해 있지만 이번 위기도 K-방역의 저력과 국민들께서 보여주신 품격 있는 시민의식이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해에는 정부가 한 걸음 더 앞장서겠으니 국민들께서도 ‘참여방역’으로 화답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지난 한 해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잘 대응해 왔다”고 자평했다.
정 총리는 같은 날 생활치료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고려대 기숙사를 방문해서도 “하루에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계속 나오면서 K-방역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마지막 고비인데 이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크게 늘어난 확진자로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 백신이 와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튼튼한 K-방역을 내년 초로 예정된 치료제와 백신으로 잘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나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K-방역이 위기를 맞았음에도 2일에도 정부는 3단계로 격상하지 않고 현 단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확진자 수가 1,000명 내외에서 폭증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3단계 격상에도 사태가 진화되지 않으면 정부가 더 내밀 카드도 없고 K-방역의 정체성도 무너질 수 있다. 백신이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전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위험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백신 접종 가능 시점이 아직도 한참 남은 만큼 3단계 격상을 지지하는 여론이 늘고 있다는 점은 정부에 부담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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