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청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다음 주 초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을 공식 열고 본격적인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다.
박 후보자가 신임 장관 후보 지명 후 지금까지 보여온 모습은 두 가지다. 먼저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이어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검찰과 소통하겠다’는 메시지를 오히려 더 강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추 장관이 형성한 검찰과의 적대적 관계를 먼저 풀어나가야만 검찰개혁을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검찰 쪽 인맥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박 후보자는 향후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왼쪽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당시 민정비서관)가 앉아서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날인 지난해 30일 박 후보자는 국회에서 취재진을 만나 “2003년부터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님이 계셨고, 문재인 대통령님이 계신다. 그 속에서 답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서 민정비서관으로 처음 검찰개혁에 발을 들였다면, 18년 후 2021년 박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검찰개혁 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박 후보자는 장관 후보 지명 직후 간단한 입장문을 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그가 검찰개혁 의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 계속 오르내리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박 후보자가 오히려 더 강조한 것은 검찰과의 ‘소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30일 국회 취재진에게 동시에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 관계가 돼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검찰 개혁을 이루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저에게 준 지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으로 발생한 법무부와 검찰의 파탄 난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박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고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후보자는 의지를 행동으로 처음부터 보이려 했다는 분석이다. 박 후보자는 지명 다음 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을 차린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광화문 쪽에 사무실을, 추 장관은 목동 쪽에 사무실을 낸 것과 달리 박 후보자는 검찰 한가운데인 서울고검에 둥지를 튼 것이다. 서울고검 바로 옆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방청인 서울중앙지검이 있다. 길 건너편에는 대검찰청이 있다. 더구나 서울고검은 현재 추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곳이지만 박 후보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박 후보자는 31일 고검에 첫 출근해 준비단에게 서울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여의도에는 민심(民心)이 있고, 서초동에는 법심(法心)이 있다. ‘민심에 부응하되 법심도 경청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청에 사무실을 정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박 후보자는 취재진을 만나 “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된 이상 법조기자들께 이렇게 인사드리는 게 마땅하다”고도 말하며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과 인사 나누기도 했다. 추 장관과 조국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언론과 항상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과는 다른 접근으로 해석된다.
박 후보자의 ‘소통’ 강조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그만큼 박 후보자가 검찰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온 배경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자는 윤 총장 측과의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소위 ‘윤 총장 라인’이 아닌 친정부 성향 검사들과도 친분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한 검찰 관계자는 “현 중앙지검 차장검사와 부장검사 일부와도 가까운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와 답변을 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박범계 의원. /연합뉴스
특히 박 후보자와 윤 총장과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해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던 2013년 11월, 박 후보자는 페이스북에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사표를 내서는 안 된다. 우연히 스쳐 지났던 범계 아우가 드리는 호소”라고 적었다. 2016년 12월 윤 총장이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오자 박 후보자는 또 페이스북에 “그가 돌아온다. 복수가 아닌 정의의 칼을 들고!”라고 적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검찰개혁’ 이슈로 추 장관과 윤 총장 갈등 국면이 시작되자 완전히 돌아섰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총장을 향해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비판했다. 질의 도중 윤 총장에게 “자세 똑바로 앉으세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 총장은 “그것도 선택적 의심 아니냐”며 “과거에는 저한테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앞으로 박 후보자가 윤 총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가 주목되고 있다. 검찰과 법조계에선 국정감사에서 보였던 적대적 관계를 이어가는 대신 협조와 소통의 모습으로 일단 전환한 만큼 윤 총장 비판은 절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박 후보자는 윤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취재진 질문에 “청문회에서 답하겠다”고만 답했다. 청문회 답변 외에도 박 후보자가 검찰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보려면 다가오는 검찰 인사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검찰 인사는 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법무부 장관 최종 지명하기 전에 이달 중순께부터 있을 예정이다. 지명 전까지 임기를 유지하는 추 장관이 검찰 인사를 진행하지만, 법조계에선 떠나는 장관이 새로 올 장관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