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연일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군불을 떼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에는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지역화폐 기반의 재난지원금 지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이 지사가 근거로 내세운 지역화폐 관련 보고서의 논리구조가 허약한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악화되고 있는 재정건전성 추이를 감안하면 ‘재정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5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4일 올린 ‘국회의원님들과 기재부 장관님께 보낸 편지’라는 글을 통해 “지역화폐를 통해 소비를 촉진시키고 수요를 진작함으로써 국민경제를 살려나갈 때”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를 통한 소비진작이 필요한 이유로 지난달 경기도 데이터 정책과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해 4월 12일 ~ 8월 9일까지 14개 카드사를 통해 중앙정부 긴급재난지원금과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으로 경기도에 지급된 금액은 모두 5조 1,190억원이었으며 같은 기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소비지출액은 78조 7,375억원이었다”며 “2019년도 같은 기간 70조 9,931억원보다 7조 7,444억원이 증가했으며 실제 지급한 5조 1,190억원보다 2조 6,254억원의 추가 소비지출이 일어난 셈”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월 4인가구 대상 최대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으며,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충전금·선불카드·상품권 형태로 지급된 지원금의 사용기한은 8월말까지였다. 이 지사는 이를 근거로 경기도지역의 재난지원금 소비 견인 효과를 지원금 대비 1.51배라고 분석했다.
다만 관련 보고서는 ‘2020년 소비 증가분이 모두 재난지원금 덕분’이라는 가정 하에서 작성돼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 증가에 미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재난기본소득’을 유일한 변수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부터 넉달간 자동차 구입시 납부해야 하는 개별소비세를 기존 5%에서 1.5%로 인하한데 이어 신용카드 사용액에 따른 소득공제 한도를 30만원 상향하는 등 소비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이외에도 코로나에 따른 스트레스를 소비로 해결하려는 이른바 ‘보복소비’라는 신조어가 지난해 5월부터 회자됐다는 점에서 재난지원금만으로 소비 증대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계청의 소비동향 지표 또한 ‘소비 진작은 재난지원금 덕분’이라는 주장에 물음표를 제기한다. 통계청의 소비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줄어든 반면 5월(0.2%)부터 소비가 본격살아나 6월(5.3%), 7월(0.9%), 8월(1.0%) 소비가 꾸준히 상승했다. 다만 이 같은 소비증대를 전국민 재난지원금 효과로 돌리려면 9월부터 소매판매액이 줄어야 하는데 9월(6.0%)과 10월(0.6%)의 판매액은 오히려 늘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4월부터 8월까지의 소비는 업태별 양극화가 되레 심해져 재난지원금 효과에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개소세 인하 혜택으로 승용차 및 연료소매점의 판매액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4월(4.1%), 5월(2.9%), 6월(20.3%), 7월(4.7%) 대폭 늘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소비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몰과 같은 무점포 소매 매출액 또한 4월(18.3%), 5월(18.7%), 6월(27.1%), 7월(22.8%) 크게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은 지난해 5월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는 업종이다.재난지원금 만으로는 자동차와 온라인 쇼핑몰에 집중된 소매판매액 증가를 설명할 수 없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피해업종 지원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KDI는 지난달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을 통해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관련 업종 매출 증대 효과가 투입예산 대비 최대 36.1%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반면 지원금의 70% 가량은 채무상환이나 저축 등으로 사용됐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부동산 시장이나 ‘코스피 3,000’ 시대를 앞두고 있는 주식 시장에 흘러갔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이 지사는 또 부채비율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의 재정여력이 경쟁국 대비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통일 관련 비용 및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후세대의 부담을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에 대한 물음표가 여전히 제기된다. 지난달말 기준 우리나라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1년전 대비 2만838명이 줄어든 5,182만 9,023명이다. 인구가 자연 감소한 것은 주민등록 제도를 도입한 이후 사상 처음이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3·4분기 0.84명으로 세계평균(2.4명)은 물론 유럽연합(EU·1.59명)과도 차이가 크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미래세대 1명이 2.2명의 현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