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입 안에 깊고 큰 상처가…" 학대 신고한 소아과 의사 '그날의 기억'

입양되기 전 정인이 모습(왼쪽)과 입양된 후 정인이 모습/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여러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양부모의 학대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만 16개월 정인(입양 전 이름)양 사건을 두고 네티즌의 공분이 확산하는 가운데 정인이가 숨지기 전 진찰하고 경찰에 아독학대를 신고한 의사가 “15개월 아기한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며 “어른으로 치면 자포자기랄까”라며 정인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소아과 전문의 A씨는 5일 전파를 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정인이는 자주 진료를 했던 아이는 아니고 2020년 1월 말쯤부터 9월23일 신고 당일까지 예방접종 포함해서 8, 9번 정도 진료했던 환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학대 신고를 했던 날의 정인이 상태에 대해서 “그날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오랜 만에 등원을 한 정인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보인다고 하시면서 저희 병원에 데리고 오셨다”면서 “두 달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 데 두 달 전과 비교해서 너무 차이나게 영양상태나 정신상태가 정말 불량해보였다”고 정인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A씨는 또한 “진찰 소견상 어떤 급성 질환으로 인한 일시적 늘어짐이나 이런 게 아닌 걸로 판단됐었다”고도 했다.

아울러 A씨는 “5월 어린이집 선생님이 1차 아동학대 신고를 하셨을 때 허벅지 안쪽에 멍 자국, 6월 정인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왼쪽 쇄골 부위가 부어 있었고, 7월 쯤 예방접종하러 엄마가 데리고 왔을 때 구강 내에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깊고 큰 상처가 있었다”고 상황을 전한 뒤 “9월23일 날 정인이 모습을 보니까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심각한 아동학대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A씨는 ‘9월23일 정인이가 고통을 호소한다든지 이런 게 있었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그 아이는 너무 정신 상태가 늘어져 있었다”면서 “이런 얘기가 15개월 아기한테 맞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이었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A씨는 이어서 “원장님 품에 축 늘어져서 안겨 있었는데 오랫동안 아이들을 많이 봐 온 경험을 비춰봤을 때 뭐라고 얘기해야 되나, 하여튼 어른들로 치면 자포자기랄까 아이한테 그런 얘기를 써도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고도 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 선물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 A씨는 “9월23일 정인이를 병원에 데려온 어린이집 원장님도 ‘정인이를 한두달 안보다가 그날 처음으로 보셨다’고 했다”면서 “원장님이 정인이가 한두달 사이에 축 늘어져서 걷지도 못하고 영양 상태가 불량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데리고 오셨던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그러면서 “신고를 하고 난 뒤 경찰분들이 상당히 빨리 병원에 출동하셨던 거로 기억한다”면서 “그동안 정인이에 대한 진찰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제 나름대로 상당히 강하게 말씀을 드렸다. 경찰분들도 잘 들으시고 바로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들과 정인이 부모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따로 연락이 없어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또 A씨는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설사 그게 조사 과정에서 법적인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뒤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그런 사항인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아동학대는 의심만 들어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라면서 거듭 정인이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앞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2일 생후 16개월인 정인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숨진 사건을 다뤘다.

정인이는 생후 7개월쯤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불과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의 사망을 두고 양부모는 사고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인이의 사망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진료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방송에서 정인이의 배를 찍은 사진과 관련, “이 회색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라면서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라고 분노했다.

이어 남궁 전문의는 “사진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면서 “갈비뼈 하나가 두 번 이상 부러진 증거도 있다. 온 몸에서 나타나는 골절. 애들은 갈비뼈가 잘 안 부러진다. 16개월 아이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건 무조건 학대”라고 주장했다.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참여한 ‘그것이 알고 싶다’ MC 김상중/사진=아동학대방지협회

그는 또한 “결정적 사인은 장기가 찢어진거다. 그걸 방치했다. 바로 오면 살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방송에서는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CCTV도 공개됐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정인이의 모습을 본 소아과 전문의는 “감정이 없어 보인다. 정서 박탈이 심해 무감정 상태일 때 저런 행동을 보인다”고 상황을 짚었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이 정인이를 안아주며 세워줬지만 정인이는 걷지를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인이의 볼록한 배를 본 배기수 교수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샌 거다. 통증 중 최고의 통증일 것”이라며 “애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굉장히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하는 MC 김상중은 “아이의 얼굴 공개를 두고 깊고 길게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아이의 표정이 그늘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기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상중은 이어 “같은 어른이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늦게 알아서, 정인아. 미안해”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방송은 정인이가 입양된 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의 아동학대를 당한 징후들을 자세하게 전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아동학대 정황 의심 신고를 세 차례 받고도 양부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등의 내용도 방송에 담겼다.

이 부부는 정인이 입양 후 입양 가족 모임에 참석하며 입양아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EBS ‘어느 평범한 가족’에도 출연하며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며 입양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양부모의 모습과는 달리 정인이의 몸은 멍과 상처 투성이었으며 소아과 전문의와 어린이집 교사들은 아동학대를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정인의 양부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서울 목동 한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당시 정인이는 장기가 찢어져 복부 전체는 피로 가득 차 있었고, 골절 부위도 여럿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지난 11월 정인이의 양부모를 아동학대치사 및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와 방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와 관련, 정인이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20일 답변 요건인 동의자 수 20만명을 넘긴 23만명으로 마감됐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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