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4일 추모 메시지와 꽃, 선물 등이 놓여 있다./양평=연합뉴스
16개월 아동이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끝내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되며 사건을 담당한 서울 양천경찰서에 대한 공분도 커지고 있다. 세 차례나 신고가 이뤄졌음에도 매번 정인 양을 부모에게 돌려보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적극적으로 초동 대처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4일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한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 글에는 6일 오전 1시 기준 약 22만 1,000명이 동의했다.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에 정부의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달성한 것이다.
청원인은 “(양천경찰서는) 최전선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국가 기관으로서 아동학대 신고를 수 차례 받고도 묵인하고 방조했다”며 “그 책임의 대가를 반드시 묻고 싶다. 파면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시민들의 비난 글이 폭주하면서 접속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들이 경찰에 공분하는 까닭은 정인 양의 부모가 정인 양을 학대하는 것 같다는 신고가 세 차례나 들어왔음에도 경찰이 매번 학대 증거를 찾지 못하고 정인 양을 부모에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결국 정인 양은 지난해 10월 온 몸에 멍이 든 채 병원에 실려와 사망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결과 정인 양은 등 부위에 강한 둔력을 받아 복강에서 출혈이 발생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3차례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서울 양천경찰서를 지난해 11월 16일 항의 방문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동 학대 사건에서 현장 경찰들이 겪는 고충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학대 의심 아동을 분리했다가 아동의 부모에게 소송을 당한 경험담을 올려 현직 경찰관들의 공감을 얻었다. 해당 경찰관은 블라인드 글에서 “명백히 내가 봤을 때는 학대였기에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지만 이후 직무유기, 직권남용, 독직폭행 등 온갖 죄목으로 형사·민사 고소를 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23개월을 쉬고 복직하기 전날 ‘다시는 대민 상대하는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정인이는 물론 정인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또 다른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용기가 안 난다”고 글을 끝맺었다. 실제로 학대예방경찰관(APO)은 경찰 조직 내에서 대표적인 기피 보직으로 꼽힌다. 일반 폭행 사건과 달리 아동 학대 사건은 증거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다가 APO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점검 작업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아동학대로 두 차례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 아동을 즉시 가해자로부터 분리 보호하도록 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도 아동학대처벌법에 재학대의 위험이 뚜렷한 경우에는 경찰 또는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이 피해아동 격리 등 응급조치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요건이 뚜렷하지 않아 현장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또 경찰은 지난달 28일 APO 660여명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250여명,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워크숍을 열고 강화된 현장 지침을 교육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