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부모와 함께 묘역을 찾은 한 어린이가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연합뉴스
3일 만에 쏟아진 11개 ‘정인이 방지법’…“형량 강화 도움 안 돼” 지적도
국회가 ‘정인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일 만에 관련 법 11개를 쏟아냈다.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자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은 제쳐 두고 부랴부랴 입법에 나선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형량을 높여 범죄를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법을 발의하자 법조계 전문가들은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국회는 지난 2일 정인이 사건이 방송 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3일 동안 11개의 아동학대 방지 법안을 발의했다. 김용판·김병욱·김정재·김성원 국민의힘 의원과 강훈식·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자 법안을 냈다. 지난 주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국민들이 ‘정인이 사건’의 잔혹성에 분노하자 정치권이 즉각 응답한 것이다.
일부 법안은 ‘형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아동 학대 치사에 대한 처벌 수준을 현행 5년에서 2배 높이고 아동 학대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내용의 ‘아동학대무관용법’을 발의했다. 노 의원은 “정인이 같은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아동 학대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무관용으로 가중 처벌하고,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등 확실한 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아동학대행위자에게 피해아동의 상담, 교육 및 의료적ㆍ심리적 치료에 대한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는 근거를 추가하는 내용의 아동복지법을 마련했고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특정강력범죄에 아동학대범죄를 추가하고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하는 특정강력범죄처벌법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양형 강화가 아동 학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협회 인권이사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 쉬운 게 그 죄의 법정형이나 처벌 형량 강화인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들이 예민하게 사건을 바라보고 행정력을 적극 동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전담 공무원들에게 개입 권한을 높이고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아동학대방지3법(정인이보호3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권욱기자
정작 ‘제2의 정인이’ 방지법은 국회 계류 중
이처럼 제2의 정인이를 막기 위한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국회에는 이미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들이 제출된 상태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발의한 ‘아동학대방지 3법’이 대표적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은 경찰이 아동 학대를 인지한 후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이 후속 조치를 취하기에는 3일의 응급 조치 기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이를 7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더라도 피해 아동을 신속히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전문 기관과 보호시설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경찰이나 전담 공무원이 아동 학대가 벌어지는 장소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보호기관에서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추가했다. 여야는 오는 8일 본회의에서 아동 학대 방지 법안들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아동학대방지 3법은 각각 상임위원회 단계에 묶여 계류하고 있다. 서 위원장이 지난 6월 발의한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은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 위원장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 법안을 “아동을 재학대 하지 않도록 ‘가정으로 돌려보내야만 한다’라고 하는 근거를 ‘안전한 곳에서 보호해야 된다’라고 하는 근거로 바꾸는 내용”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했다. 하지만 이내 임대차3법 등에 대한 논의가 불붙으면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날 소위에서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직접 출석하며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이 화제는 옮겨붙었다.
피해아동 응급조치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같은 법 역시 법사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이후 논의되지 않았고, 아동복지법 역시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에 계류하고 있다. 서 위원장은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동학대방지 3법 통과를 촉구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