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 사진제공=한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 대출과 자산 시장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과잉 유동성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금융 안정에 훨씬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과도한 부채로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부채 함정(debt-trap)’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가계 부채 급증 상황을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8일 한은이 공개한 지난해 12월 24일 열린 금통위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금융 안정 보고서에 대한 토의 과정에서 금융 불균형에 대한 경고음을 분명히 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금통위원은 “가계 신용과 기업 신용이 급증하고 자산 가격 상승 압력이 증대되는 등 금융 불균형이 심화될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기 경보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청년층의 레버리지(leverage) 확대가 소비 제약을 초래하는 등 거시 경제 측면의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저축은행이 대부 업체에 대한 대출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를 우회하는 한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이에 따른 리스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유동성 부족 상태인 자영업자 가구와 상환 불능 상태인 자영업자 가구를 어떻게 구분해 대응할 것인지 선제적 고민이 필요하다”며 “매출이 회복되더라도 유동성 부족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신용 위험이 과소 평가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금통위원들은 가계 대출 부실 위험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가계 대출 증가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게 나타난 만큼 올해 가계 대출 증가 규모가 전년 대비 축소되더라도 예년에 비해 큰 수준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화정책 운영 방향에 대해 ‘금융 불균형 위험에 한층 유의한다’라는 표현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한 금통위원은 최근 금융 안정 상황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금융 불균형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른 금통위원은 경기 우려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표현이 의도하지 않은 시장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자산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민간 신용 증가 등 금융 불균형 위험에 한층 유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금통위원은 “과거 국제결제은행(BIS)이 부채 함정을 경고한 바 있는데 경제주체의 부채, 그중에서도 가계 부채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해진 정책들이나 조치들이 향후 정상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에 유념하면서 정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