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대통령[동십자각]

양준호 문화레저부 차장


체육계는 지금 선거의 계절이다.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오는 18일에 진행되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대한골프협회장 선거는 12일에 열린다. 대한배드민턴협회·국기원장 선거도 이달에 치러진다. 최근 선거를 마친 종목을 포함해 대한체육회 산하 40개 종목 선거가 새해 첫 달에 몰렸다.

표심은 변화보다는 안정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스포츠가 취소되거나 밀리거나 축소돼 치러지는 비상 체제가 이어지면서 새 인물을 갈구할 여유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상적 공약만으로 변화를 외치는 새 후보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최대 관심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다. 연간 4,0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체육 대통령’인 동시에 체육회 운영이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관리·감독 받는다는 제약도 있다. 체육계 통합을 이끌면서 정부 정책과도 보조를 맞춰야 하는 자리다. 이기흥 현 회장과 국회의원 출신 이종걸·유준상 후보, 선수·지도자·교수를 지낸 강신욱 후보 간 4파전이 유력한데 체육계 장악력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업은 이 회장이 유리하다는 평이 많다.

그런데 이 회장과 ‘반(反) 이기흥’을 외치는 다른 후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체육계 주권 강화를 앞다퉈 강조하면서 선수 인권 보호에 대해서는 형식적 구호와 뻔한 대책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국가체육위원회나 체육청 설립, 체육부 부활 등의 화려한 공약 속에 체육계 폭력·성폭력 근절은 구색 맞추기용 공약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앞서 후보 등록 과정에서 자격 논란과 대타 논란, 출마 선언 번복 등이 이어져 선거판이 일찌감치 진흙탕이 된 상황이다. 쇼트트랙 성폭력 사건과 철인 3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등으로 체육계 난맥이 드러난 게 불과 재작년과 지난해 일인데 체육 대통령을 뽑는 유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다른 나라 일만 같다.

폭력에 대한 체육계의 무감각은 지난해 12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도 드러났다. 과거 ‘맷값 폭행’ 파문을 일으켰던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몰표를 받은 것이다. 갑질 폭행 전력에 눈감고 인프라 확충 등 솔깃한 공약에 표를 던진 결과다. 최 씨는 시위를 벌이던 화물차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로 폭행한 뒤 2,000만 원을 건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최 씨는 2심에서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

올해는 도쿄 올림픽의 해다. 국위 선양이라는 대의에 가려 체육계 인권 문제가 이번에도 유야무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까 걱정스럽다. 공교롭게도 대한체육회장 선거일인 18일은 최 선수에게 가혹 행위를 한 감독과 선수 2명에 대한 선고 공판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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