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정책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권욱기자
야권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를 중심으로 단일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단일화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맞붙는 ‘3자 구도’ 대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안 대표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여권”이라고 말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1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안 대표 중심의 단일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며 “우리 당의 가장 적합한 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책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 대표를 겨냥해 “단일 후보로 만들어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단일 후보라고 얘기하면서 나로 단일화해달라는 요구를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더라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안 대표는 이에 “야권 지지자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으실까 걱정이 된다”고 발끈했다. 안 대표는 이어 “야권 지지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어 서울시장 선거에 승리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또 ‘안 대표의 지지율은 의미가 없다’는 발언을 두고 “지금 국민의힘 지지자, 국민의당 지지자, 중도의 계신 분과 합리적 진보 세력, 이런 분들의 마음을 전부 모아 단일 후보를 지지하게 해야 이 바람이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가 결국 누구와 경쟁하는 건가. 여권과 경쟁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 관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앞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7일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안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 입당 또는 양당 합당을 역제안했다. 그러나 안 대표가 입당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입당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합당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이 정당 통합은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단언하고 있는데다 안 대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결국 나경원 전 의원이 제안한 바 있는 국민의힘 후보 선출 후 야권 후보 단일화, 이른바 ‘2단계 단일화’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방안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김 위원장이 자신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당내 인물 발탁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김 위원장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데 당 외부 인사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는 것은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당내 후보 발탁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진애(오른쪽) 열린민주당 의원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국회 의원회관 김 의원 사무실에서 만나 각당 최종 후보가 될 경우 단일화 추진에 합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김진애 의원실
야권의 고민은 단일화 실패 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이번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이날 각 당의 최종 후보가 될 경우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여권의 유력 주자가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현재 서울에서 지지율이 민주당에 앞선다지만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며 “지방선거 등을 포함해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내리 일곱 번을 졌다. 단일화 실패는 곧 선거 패배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도 야권의 입장에서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다만 그 시점은 늦게 이뤄질 수록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 교수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사례를 봐도 그렇고 ,단일화는 이른 시점에 이뤄질 필요는 없다”며 “단일화가 이른 시점에 되면 상대 당에 공격 지점을 내줄 수도 있고, 전략 수립을 쉽게 해줄 수도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 전초전이라 여야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은)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고 언급하며 윤 총장이 대권에 다가갔다고 추켜세운 것도 ‘안 대표 중심 단일화’에 쏠린 당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발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밖 인물로 평가했던 윤 총장을 띄울 정도로 당내 후보 발탁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다는 방증으로도 풀이된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