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만 가운데 있는 섬 가우도에서 바라본 일몰. 가우도 양쪽으로 걸쳐 있는 현수교는 쐐기 모양의 강진만에 선을 그어 그 모습이 흡사 알파벳 ‘A’자 같다.
호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맛의 고장이지만, 누군가 “호남 중에서도 가성비가 가장 좋은 맛의 고장을 알려달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로 강진이다. 강진의 미각이 빼어난 것은 지형 탓도 무시할 수 없다. 바다가 마치 쐐기 모습으로 강진 땅을 치고 들어와 만을 이루고, 여기서 나는 수산물이 비옥한 땅에서 산출되는 농산물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강진은 인근 지역 사람들로부터 “강진 사람들 음식 헤프다”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호남의 여러 지역들이 미각의 고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만, 이는 그저 지역이 크고 인구가 많아 난 소문일 뿐,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전남에서 강진을 따라갈 미각의 고장은 없다. 특히 강진 한정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맛의 고장으로 소문 난 인근 지역에서도 한정식을 먹으러 강진을 찾아올 정도다. 이번 주에는 기자가 섭렵한 강진 맛집을 몇 곳 소개한다.
강진의 대표 먹거리 한정식. 서울에서는 1인당 5만 원은 줘야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을 2만 5,000원이라는 가벼운 가격에 선뜻 내놓는다.
우선은 한정식이다. 청자골 종가집은 지역을 대표하는 한정식집 중 한 곳이다. 방에 들어서면 벽에는 종갓집 며느리인 주인이 담근 3년 된 묵은지를 맛볼 수 있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차림은 4인상 기준 10만 원짜리와 12만 원짜리가 있는데 굴비구이·대하구이·불고기·전복회·생선회가 올라온다. 서울에서는 1인당 5만 원은 줘야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이다.
‘강진한정식 모란’도 지역에서 손꼽히는 맛집이다. 상차림이나 손맛은 청자골 종가집과 비슷하다. 이 집 역시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이 비어 갈 때쯤이면 종업원이 수레에 또 다른 찬을 가져와 밥상을 다시 차려 준다.
강진에는 9,000원짜리 저가 한정식도 있다. 하지만 상차림은 9,000원 짜리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짐하다.
몇 만 원짜리 정식도 가성비가 좋지만, 강진의 맛집 탐방이라면 9,000원짜리 저가 한정식 순례를 빼놓을 수 없다. 저가 한정식집의 터줏대감으로는 설성식당과 수인관을 꼽을 만하다. 홍어회·돼지불고기·족발 등 한 상에 20여 가지 넘는 반찬이 올라오는데 어느 것 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다. 2인 이상이면 염가의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강진의 보양식 회춘탕.
강진까지 왔으면 이 고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양식인 회춘탕도 맛봐야 할 별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몸에 좋다는 문어·전복·닭 같은 산해진미의 재료들이 다 들어 있는 회춘탕은 전라절도사 병영이 광산현에서 강진병영으로 옮겨 마량에 진영을 설치하면서 생겨난 음식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느릅나무·당귀·가시오가피·칡·헛개나무·뽕나무를 푹 끓여 우려낸 국물에 닭과 문어·전복을 넣고 다시 끓여낸다. 강진을 대표하는 사계절 보양식인 만큼 회춘탕 전문 식당만 10여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식당이 유명하다.
짱뚱어를 갈아 넣고 끓인 갯뻘탕.
미각 여행을 위해 찾은 강진이지만, 관광이 빠지면 섭섭하다. 이번에 찾은 곳은 강진 관광의 중심인 가우도다. 강진만 한복판에 위치한 작은 섬인데, 섬을 징검다리 삼아 양쪽으로 현수교가 걸쳐 있는 모습이 빨래집게를 닮아 이곳 사람들은 강진이 알파벳 첫 글자 ‘A’자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우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의 상징처럼 돼버린 짚트랙이다. 가우도 섬 꼭대기 청자 모양으로 세워진 짚트랙 탑승장에서 저두 주차장까지 장장 970m. 섬과 육지 사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놀이시설이다. 헬멧 착용 후 대기선에 앉아 있으면 갑자기 발밑이 꺼지면서 쇠줄에 걸린 도르래를 따라 몸이 바다 위 허공으로 솟구친다. 저두 주차장에서 짚트랙 탑승장까지 40분을 걸어 올라가야 하지만 성수기에는 3~4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요금은 어른 2만 5,000원, 어린이 1만 7,000원이다.
강진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자다. 강진에서 나는 점토가 도자기 빚기에 알맞아 고려 시대에는 청자를 생산하는 대규모 요(窯)가 있었고, 청자 유물이 흔했다. 그래서 골동품 업자가 강진을 방문해 어느 집에 개 밥그릇이 청자인 것을 보고, 개 주인에게 “내가 개를 살 테니, 개 밥그릇을 끼워 달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이러한 강진 청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자, 국내 유일의 청자 전문박물관이다. 고려청자 제작기술을 볼 수 있는 유물 전시, 직접 흙을 빚어 촉감으로 느끼는 빚기 체험, 현대 디지털 기술로 재탄생한 콘텐츠 전시 등 고려청자의 과거·현재·미래를 한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관람료는 2,000원이지만 설·추석 명절에 한해 요금을 받지 않는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따른 거리 두기 일환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글·사진(강진)=우현석객원기자
강진 가우도에 설치된 짚트랙은 970m 길이로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