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성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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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한때, 뜨거움은 열정이라 불렸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의 고열은 집에서 나갈 수도, 어딘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체온이다. 종로구 삼청로의 학고재갤러리가 새해 첫 소장품 기획전의 제목을 '38℃'로 정했다. 학고재 측은 "38℃는 낯선 균의 침투에 달아오른 감염의 지표이자 고열의 기준점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목욕물의 온도이기도 해서 생명의 겸손함으로 이어진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몸,정신,물질,자연의 4개 소주제로 나뉜다.
| 팀 아이텔 '란다인바르츠 (업컨트리)'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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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초상'으로 유명한 이우성은 손바닥 위에 불꽃을 그려 올렸다. 제목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작가는 초기작에서 불안과 무기력의 소재로 불을 사용했지만, 이 작품 이후로 불과의 거리 두기, 타인을 비추는 온화한 빛으로 승화시키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역시나 몸을 그리지만, 독일 화가 팀 아이텔이 그린 인물은 고독하고 소외된 현대인이다. 잘 정돈된 공간을 거니는 인물은 쓸쓸하고, 경기장 가장자리에 뒷짐을 지고 선 사람은 의지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사연을 투영해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외로운 그림을 통째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던 팀 아이텔은 순수미술가이면서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편이다.
| 아니쉬 카푸어 '쿠비시리즈'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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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빛으로 형언할 수 없는 정신성을 구현해 온 아니쉬 카푸어는 붉은 색이 인간 내면의 핵심을 상징한다고 봤다. 혈관 뻗은 심장처럼 보이는 그의 '쿠비 시리즈'는 티베트 남서부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해 갠지스 강까지 합류하는 강 이름에서 따 왔는데, 사회와 정신의 상호 연결성을 지형 개념에 빗대 추상화 했다.
검은 선으로 그린 박광수의 작품은 수풀 우거진 풍경화로 보이나, 흐트러진 선들이 그리는 것은 꿈과 현실의 경계 같은 정신성의 이면이다.
| 이안 다벤포트 '새겨진 선'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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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기에 담은 페인트를 화면에 흘려보내는 영국 작가 이안 다벤포트, 공업용 소재인 에폭시 레진을 회화에 접목해 긋고 굳히는 작업을 반복하는 김현식 등은 '물질'을 통제하려 하면서도 그 자율성에 의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엄격함은 자연을 그리는 스웨덴 작가 안드레아스 에릭슨. 허수영, 장재민 등과 대구를 이룬다. 에릭슨은 자연의 색채와 질감을 참조할 뿐 세세한 묘사는 하지 않는다. 세잔의 후예 같은 견고한 추상으로 그린 한국의 지리산이 인상적이다. 허수영의 '숲'에는 시간의 흐름이 더해졌고, 장재민의 '뜻밖의 바위'는 감각이 두드러진다.
| 안드레아스 에릭슨 '세마포어 지리산'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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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본관에서 작가 10명의 작품 16점을 이달 말까지 전시하고, 학고재 온라인 전시장 '오룸(OROOM)'에서는 강요배·이동엽·주세페 페노네 등 14인의 작품 37점을 2월 말까지 선보인다.
| 장재민 '뜻밖의 바위'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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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