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국난극복본부 점검회의에 참석해 김태년(오른쪽) 원내대표, 홍익표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권욱기자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 경쟁력을 흔들 수 있는 법안과 정치적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이익 확대보다는 기업이 이미 이루어놓은 성과를 나누는 방안이 대거 쏟아지면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마저 위태롭게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이 4월 보궐선거 일정에 맞춰 △근로자 3법 △특별재난연대세 △서민금융 추가 확대 등의 경제정책 카드를 잇따라 꺼내 들고 있다. 서울·부산시장에서 밀릴 경우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위기의식 속에 여당과 함께 야당 역시 ‘표심’만을 바라본 선심성 정책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선거만 이기면 끝’이라는 식의 정책 제안에 결국 ‘정치가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자리 위축 우려 ‘근로자 3법’=14일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한국판 뉴딜 당정 추친본부 회의’을 열고 이른바 ‘근로자 3법(가사근로자법·플랫폼종사자법·필수노동자법)’을 2월 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취약 업종의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인데 법안의 처리시기를 2월로 못 밖으면서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표심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문제는 이 법을 꺼낸 시기다. 고용시장은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취업자 수가 전년보다 약 22만 명 줄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하나같이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내용이다.
가사도우미에게 근로시간·연차휴가·퇴직금 등을 보장하는 법이 대표적이다. 가사근로자의 고용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에 의해 이뤄지고 근로는 대부분 육아에 맞춘 시간제 형태다. 하지만 법이 통과되면 직장인의 부담이 높아져 이들이 고용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또 플랫폼종사자법은 배달기사와 대리기사 등 개인사업자에게 ‘노사관계’에 준하는 노동법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플랫폼사업자들의 비용 증가로 고용이 줄고 산업생태계마저 위축될 수 있다. 재난 시 국가와 지자체의 보호를 받는 필수노동자법도 대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강화된 노동규제가 코로나 사태 이후 일자리 회복을 막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생산이 급격히 확대되면 노동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줘야 고용이 늘어나는데 지금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익공유 계층 갈등 불씨 될라=더욱이 민주당은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이익공유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피해가 덜한 기업·가계가 피해가 심한 업종·계층에게 이익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심지어 초고소득자와 기업에 한시적으로 ‘특별재난연대세’를 부과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직전 연도보다 종합소득이 증가한 개인에게 5%의 세금을 추가로 걷어 피해 계층에게 나눠주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넓은 세원, 낮은 세율, 보편 과세’라는 조세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상장사 685개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4.8%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 전년보다 5.1%포인트 뛴 42.4%로 치솟은 게 기업들의 현실이다. 특별재난세는 투자와 고용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영업이익을 몽땅 세금으로 추징하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금융사의 이익을 출연받아 서민대출을 더 늘리는 법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또 특별재난세는 ‘집 없는 직장인’의 소득으로 ‘집 있는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문제로, 계층 갈등의 불씨로 번질 리스크도 안고 있다. 전년보다 소득이 늘어난 것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특정 경제주체의 이익을 강제로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기업·자영업 부채 폭탄 터질 수도=더 큰 우려는 정치권이 돌이킬 수 없는 ‘재정 중독’ 상태에 빠진 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3차 재난지원금이 집행도 되기 전에 “충분하지 않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거론하고 나섰다. 2월 국회에서 논의될 서민금융 확대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집합 제한 조치로 자영업자들이 손실을 보면 이를 재정으로 보상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전국 500만 명의 자영업자에게 100만 원씩만 보상해도 5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016년 627조 원이었던 국가 부채가 올해 954조 원까지 치솟는 현실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다. 오히려 ‘재정 건전성’을 말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분위기다.
금융 안정과 조세 정의를 외면하고 재정 중독에 빠진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선 국면이 시작되고 내년 대선까지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가 빠르게 반등하지 않으면 가계·기업·자영업에서 동시에 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양 교수는 “만기 연장 유예로 부채의 질마저 나빠진 상태에서 경기가 빠르게 반등하지 않거나 소득을 채울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실물 경제의 위험이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며 “이를 받아낼 정부마저 빚만 늘리고 있어 당장 관리를 하지 않으면 향후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경우·박진용 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