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울산에서는 8세 여자아이가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부검 결과 옆구리를 맞아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당일은 피해 아동 ‘서현이’의 소풍날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의붓엄마는 ‘제발 소풍만은 보내달라’고 애원하던 서현이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또다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가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 끝에 세상을 떠난 사건이었다. 정인이가 사망 당시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강한 충격으로 췌장까지 절단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분노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정인이를 추모하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이어졌고 법원에는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가 쏟아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은 그동안 가려져 온 우리 사회의 총체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인이가 입양된 뒤 넉 달간 무려 세 차례나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 기관 모두 양부모의 말만 믿고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인이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도 가정 조사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외면하는 사이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고작 16개월 밖에 안 된 정인이는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다.
국민적 공분을 사는 아동 학대 사건이 벌어질 때면 어김없이 정부 각 부처와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8년 전 서현이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을 때도 넉 달 만에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 아동 격리 보호 등을 담은 범정부 대책이 나왔고 2015년 인천 초등학생 감금 학대 사건과 2017년 친부와 계모에 폭행당해 숨진 고준희양 사건 때도 정부와 정치권은 아동 학대 근절 방안을 쏟아냈다. 그렇지만 정인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아동 학대 사건은 줄지 않고 오히려 최근 4년간 2배 넘게 늘어났다. 피해 아동의 분리 조치에 필수적인 쉼터 확보나 가정방문 조사에 나설 전담 인력 확충, 관계 부처 간 유기적 공조 시스템 등과 같은 제반 인프라 구축 없이 보여주기 식 땜질 처방에 그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발표만 해놓고 실행에 옮기지 않은 정책들도 적지 않았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기 전에 기존에 만들어놓은 시스템부터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는 전문가들의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9년 한 해에만 42명의 어린 생명이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는 숨겨진 또 다른 ‘정인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과 공포 속에 떨고 있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의 분노나 반짝 관심이 아니라 비극적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실질적 제도 개선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인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이자 우리 어른들이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 아닐까 싶다. kim0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