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월 15일 미국 상원 인사 청문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이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찰스 윌슨(당시 63세·사진)이 발언대에 섰다. 윌슨은 12년째 제너럴모터스(GM)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임해온 인물. 250만 달러어치의 GM 주식을 보유한 주주이기도 했다. 의원들은 윌슨이 GM을 이끌며 전시 무기 생산에 공헌, 훈장까지 받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미국 정부와 GM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어떻게 처신하겠는가.’
윌슨의 답변. “오랫동안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왔다.” 의원들은 정부(국방부)와 기업의 유착 가능성도 거론했지만 윌슨은 청문회 문턱을 가볍게 넘었다. 상원은 그의 국방장관 임명이 적절하다는 청문 보고서를 압도적 표 차이(찬성 77표·반대 6표)로 통과시켰다. 청문회 과정에서 주식을 처분했으나 윌슨의 발언은 보다 짧은 문장(‘GM에 좋은 것이면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으로 바뀌어 널리 퍼졌다.
윌슨은 국방장관 지명 전 보다 심각한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영속적인 전시경제가 없다면 미국은 대공황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갔으나 ‘영구적인 전쟁이 필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현실로 나타났다. 지구촌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며 패권을 잡았다. 윌슨은 국방장관 재임 4년 8개월 동안 기업의 경영 기법을 국방 부문에 접목,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국방비를 크게 늘렸다.
윌슨 국방장관 시절 미국은 정부 재정지출의 절반을 군사비에 투입,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국방 기술력을 다졌다. 윌슨의 이론과 주장이 빗나간 것도 있다. 당장 ‘GM에 좋으면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명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제는 자부심의 상징이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를 주름잡던 GM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49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구제금융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숱한 고비를 겪은 GM과 달리 갈수록 강고해지는 괴물도 있다.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동에 포성이 가라앉아도 미국의 국방비는 증액 일변도다. 윌슨이 말한 ‘항구적 전시경제’는 군수산업을 위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전쟁과 다를 게 없다. 피를 먹고 사는 군산복합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사회의 미래는 불안하다. 폭탄을 이고 사는 셈이다. 미국과 GM의 그림자는 언제까지 같이 움직일까.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