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잠수항공모함 I-400

1943년, 日 초대형 잠수함 개발


1943년 1월 18일 일본 히로시마현 항구도시 구레. 해군 공창에서 ‘I-400(伊-400)’함의 진수식이 열렸다. ‘센토쿠급(潛特型)’으로도 불린 이 함정의 특징은 세 가지. 첫째, 컸다. 길이 122m로 독일 잠수함보다(가장 많이 생산된 U-보트 Ⅶ형 기준) 55m나 길었다. 수중 배수량 6,560톤으로 전후 전략핵잠수함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 둘째, 비쌌다. 척당 건조 비용이 2,886만 엔(현재 환산가 270억 엔)으로 일본이 뽑은 1급(갑형) 잠수함보다 3~4배, 2선급(을형) 잠수함보다는 6~8배나 들어갔다.

주목할 것은 세 번째 특징. ‘잠수공모(潛水空母·잠수항공모함)’라는 함종 분류에서 알 수 있듯이 항공기 3대를 탑재,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기능을 합친 전투함으로 건조됐다. 잠수공모의 발상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차 대전기 독일에서 구상되고 영국도 연구하다 접었던 사안. 프랑스가 해군 군축조약을 피하는 수단으로 1929년 건조한 잠수순양함 쉬르쿠프급(110m·4,304톤)도 항공기를 운용했으나 잠수공모와는 개념부터 달랐다.


일본은 왜 돈도 많이 들고 다른 나라는 포기한 잠수공모 개발에 나섰을까. 은밀성과 빠른 공격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서양의 미 해군이 태평양으로 건너오는 길목인 파나마 운하를 파괴하고 싶었다. 잠수공모 건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1942년부터는 더욱 그랬다. 전황이 불리하다는 점을 파악한 일본은 미 함대의 증강을 잠시나마 막을 방편으로 파나마 운하 폭격을 골랐다.

일본은 18대를 건조할 계획이었으나 완공은 단 3척. I-400부터 진수 1년 뒤에 겨우 실전 배치됐으나 잦은 고장으로 패망 직전에야 출동 명령을 받았다. 미군은 승전 뒤 센토쿠급 잠수함을 모조리 찾아내 침몰시켜 버렸다. 동맹에서 적국으로 변해가는 소련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잠수공모가 전후 초대형 전략핵잠 설계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쟁에 눈먼 군국 일본의 착각과 어이없는 시행착오 중의 하나였다는 게 정설이다. 애초부터 일본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개전 직전 전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은 28.7%로 3.8%에 불과한 일본보다 7.5배나 높았다. 전쟁 수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강철 생산도 5,138만톤 대 581만톤으로 미국이 9.9배 많았다. 맞수가 안 되는 상대를 잠수공모 같은 꼼수와 기행으로 넘으려 했으니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할까.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