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들이 점포를 없애려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영향평가 결과를 3개월마다 금융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은행권 자율규제에 따라 내부적으로만 영향평가를 거치면 돼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할 경우 다른 기관과의 창구 제휴나 고령자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대체 수단을 마련하도록 하는 규정도 사실상 의무화된다. 모바일·인터넷뱅킹이 완전한 대세가 되면서 은행권의 점포 폐쇄 속도가 빨라지자 금융 당국이 고령층과 디지털 취약 계층의 금융 소외를 방지하겠다며 절차 강화에 나선 결과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의 점포 폐쇄 관련 정기 보고와 공시를 강화하는 내용의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을 사전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은행들은 분기마다 금감원에 제출하는 업무보고서의 ‘국내지역별 점포 현황’에 폐쇄 점포에 대한 사전영향평가 결과를 첨부해야 한다. 현재 은행들은 자율적으로 마련한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에 따라 폐쇄 대상 점포의 고객 수, 연령대 분포, 대체수단 여부 등을 분석하는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자율규제인 만큼 이제까지는 은행이 각자의 경영 여건에 따라 영향평가의 세부 기준, 평가자 등을 자체적으로 정하고 결과도 내부 의사 결정에만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세칙 개정에 따라 앞으로는 이 영향평가 결과를 금감원에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결과 외부 공개를 의무화한 셈이다.
금융 당국은 은행의 점포 폐쇄 문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발표한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 방안’의 일환으로 은행 지점 폐쇄 영향평가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나아가 없어지는 점포를 대체할 수단으로 고령자 전용 앱을 만들고 은행별로 관련 실적을 점검해 영향평가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금감원이 이 내용이 담긴 영향평가 결과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만큼 은행으로서는 고령자 전용 앱 운영·홍보가 점포 폐쇄의 전제 조건이 된 것이다. 폐쇄 전 사전 통지 기간도 기존 1개월 이전에서 3개월 이전으로 한층 엄격해진다. 이렇게 강화된 절차는 이르면 올 1·4분기 안에 확정돼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 당국이 이처럼 점포 폐쇄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은 은행권의 오프라인 영업점 축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5대 은행은 전체 점포의 5%에 달하는 237곳을 통폐합하며 역대 최대로 많은 점포를 없앴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 수를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례적인 공개 경고까지 날렸지만 비대면·디지털 금융의 일상화에 발맞춘 구조 조정을 ‘생존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은행권으로서는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이번 조치로 점포 운영에 대한 당국의 직접 개입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는다. 앞으로는 폐쇄 최소 3개월 전에 영향평가를 포함한 모든 절차를 마쳐야 하는데 분기마다 영향평가 결과 보고가 의무화되면 당국이 사전에 점포 폐쇄 계획을 들여다보고 제동을 걸 수 있어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채널 전략은 은행의 핵심 영업 전략인 만큼 디지털 금융 확산 속도를 고려할 때 점포 축소는 자원 재배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