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원래 고온다습한 인도에서 악취를 없애고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것이 불교와 함께 전래돼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다양한 용도로 향을 사용했다. 종교 의례와 국가적 행사 등에 널리 사용된 향은 종류와 용도에 따라 향을 사르는 향로의 형태와 향로를 놓는 위치 등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이름도 다양했다.
받침(다리)이 있어 상이나 단 위에 올리는 거향로(居香爐)가 가장 흔하다. 손으로 들고 다니는 수로(手爐)나 병향로(柄香爐·손잡이 향로)도 있다. 어딘가에 걸고 매달아 사용하는 향로는 현향로(懸香爐) 또는 현로(懸爐)라고 한다.
지광국사탑(국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원주 법천사지에서 출토된 여러 금속공예품 중에도 현로 몇 점이 전해진다. 이 중에 글씨(銘文·명문)가 새겨진 현로가 있는데, 무자년(1168년 추정) 법천사에서 미타회(彌陀會·불교 행사)라는 행사를 위해 현로 3개를 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통해 명문이 새겨진 솥단지 모양 향로의 이름이 ‘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름과 형태를 통해 걸어 놓고 사용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자년 법천사에서는 미타회를 거행하기 위해 현로를 걸어 두었으며, 그 현로의 구멍에서 향이 나와 공중으로 흩어져 행사의 엄숙함을 더했을 것이다.
현로는 통일신라나 조선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특수한 형태이며, 고려의 독자적인 향로이다. 당나라에도 거는 용도의 향로가 있었지만 구멍 뚫린 둥근 공 모양으로 쇠사슬에 걸 수 있는 구조다. 공 모양의 현향로와 고려의 솥 모양 현로는 기본적인 형태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같은 계통으로 보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고려의 현로를 어디에 어떻게 걸어서 사용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전해지는 현로의 크기가 10~50cm 정도로 큰 차이가 있어, 큰 것은 고정하여 걸어두고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10cm 미만의 작은 것은 사슬에 연결해 들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 사슬에 연결해 걸어 사용하는 작은 향로는 현재 천주교에서 미사 중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의식의 엄숙함을 위한 의례에는 종교가 따로 없는 듯하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