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로이센의 1858년 국혼에서 연주된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곧바로 귀족과 시민들의 결혼 음악으로 널리 퍼졌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 끊임없이 연주되는 축복과 설렘, 희망의 음악이 있다. 뭘까. ‘결혼행진곡’이다. 서구식 결혼식의 음악은 리하르트 바그너로 시작해 펠릭스 멘델스존으로 끝난다. 신부가 입장할 때 울리는 음악은 바그너가 지었다. 신랑과 신부가 팔짱을 끼고 하객 사이를 행진할 때 음악의 작곡가는 멘델스존. 선율과 박자, 작곡가가 다르지만 두 곡은 명칭이 같다. ‘결혼행진곡’. 영어명도 둘 다 ‘웨딩 마치(Wedding March)’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바그너의 곡은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 바그너가 독일 전승을 오페라로 옮긴 ‘로엔그린(1850)’에서 여주인공 엘자는 절망감에 빠진 채 정신을 잃고 죽고 만다. 쇼크사 직전 가장 행복하던 결혼식 음악(혼례의 합창)이 바로 신부 입장에 쓰이는 곡이다. 반면 멘델스존이 1841년 작곡한 결혼행진곡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 ‘한여름 밤의 꿈’에서 3각·4각 관계로 얽히고설킨 두 쌍의 남녀가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 곡이 붙었다.
독일 출신인 두 거장은 사이가 극도로 나빴다. 19세기 게르만 민족주의의 화신 격인 바그너는 네 살 위인 멘델스존을 원수처럼 여겼다. 유대인 중에서도 금융 가문을 대놓고 혐오했기 때문일까. 바그너는 훗날 히틀러에 의해 ‘위대한 아리안 작곡가’로 불렸다. 상반되는 내용과 상극인 두 작곡가의 곡이 혼인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게 된 계기는 1858년 영국과 프로이센의 국혼. 런던에서 열린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공주와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의 결혼식에 두 곡이 연주된 후 귀족층을 거쳐 전 계층의 웨딩 마치로 자리 잡았다.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행복과 비극이 섞였기 때문인지 빅토리아 공주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11세에 처음 만난 아홉 살 위 왕세자에게 15세에 청혼 받아 18세에 결혼해 4남 4녀를 뒀지만 병약한 남편은 독일 황제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죽었다. 황제에 오른 장남(1차 대전 패전으로 퇴위한 빌헬름 2세)이 자신을 어머니보다는 ‘잠재적국인 영국의 공주’로 간주하는 통에 말년을 고통스럽게 지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고통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뜩이나 감소한 결혼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더 줄어들었다. 치솟는 부동산에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즐비하다. 로마는 미혼과 출산 포기를 살인에 버금가는 중죄로 간주하고 과중한 벌금을 매겼다. 기성세대가 오르는 집값에 웃는 동안 청년의 꿈은 포말이 돼간다. 두렵다. 이 사회의 미래가. 후대에 뭐라 변명할 수 있을지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