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학대 정황, 저한테 왜 얘기 안 해줬을까" 억울함 호소한 양부의 한마디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가 안장된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놓인 정인이 사진./연합뉴스

양부모의 학대 속에 생후 16개월 만에 숨을 거둔 ‘정인이 사건’에 대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후속 보도가 이어진 가운데 정인이 사망 관련, 방임과 방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양부 안모씨는 방송에서 학대 정황을 알린 지인들을 향해 “그런 얘기를 왜 안 해줬을까”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인이 사망 사건을 다뤄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SBS ‘그알’은 지난 23일 후속 방송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 할 길’ 편에서 정인이에 대한 학대 사실을 몰랐다는 정인이 양부에 초점을 맞췄다.

첫 재판 전 ‘그알’ 제작진을 만난 안씨는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저희 첫째 (아이)는 어떡하느냐”면서 “주변 사람들은 왜 (정인이 학대 정황을) 저한테 그런 얘기를 안 해줬을까. 지금은 다 진술하면서”라고 말했다.

이같은 안씨의 발언은 정인이 학대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자신이 정인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억울함의 표현으로 양모 장모씨의 학대 사실을 인지했거나 가담했을 가능성을 부인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안씨는 장씨가 입양을 적극적으로 원했다고도 주장했다. 안씨는 ‘그알’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결혼 전부터 아내가 입양 이야기를 하고 적극적이었다.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저는 사실 한두 번 정도 포기하자고 했는데 아내가 끝까지 그래도 우리 (입양 결정)한 거니까 같이 용기 내서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안씨의 주장과는 달리 지인들은 상반되는 의견을 내놨다. 안씨의 평소 모습에 대해 한 지인은 “(정인이) 아빠도 이상하게 느껴졌다”면서 “‘이맘때 아이 지능지수가 강아지하고 비슷해서 잘하면 상을 주고 못 하면 벌을 준다’며 8개월 된 아이가 우니까 안 안아주고 울음을 그쳤을 때 안아주더라”라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사진=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캡쳐

또 다른 지인 역시 “차 안에서 (장씨가) 정인이에게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걸 목격했는데 애한테 영어로 막 소리 지르고 양부는 첫째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들은 정인이 사망 전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온 안씨에게 정인이의 심각한 상태에 대해 전했지만 안씨가 정인이를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정인이는 입양한 훌륭한 부부라는 주위의 찬사를 얻기 소모품”이었다고 상황을 짚었다.


또 김태경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이 정인이를 입양한 이유는) 헌신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삶을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안씨는 지난 13일 열린 첫 재판에서 방송 내용과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안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후 살인죄로 공소장이 변경된 양모 장씨와 달리 아동유기·방임 혐의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법정에 출석한 안씨는 “아이에 대한 보호 감독을 소홀히 한 점은 인정한다”면서 “아내가 아이를 자기 방식대로 잘 양육할 거라 믿어서 그런 것이지 일부러 방치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씨 측 변호인 역시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씨는 장씨의 폭행 행위에 공모한 사실이 없다”면서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인이 양부도 양모와 공범’이라며 살인죄 적용을 촉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는 지난 13일 청와대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섰다.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사진, 꽃, 선물 등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청원에서 청원인은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자들조차 아이가 학대받고 있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겠는데 아버지 된다는 사람이 그걸 몰랐다고?”라면서 “제 상식으론 눈을 감고 다니지 않는 이상 모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직장 일이 바빠 새벽에나 출근하고 퇴근해 누워있는 아이만 본 건가? 그럼 그건 분명 아동학대치사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뒤 “아버지가 아이가 죽어가는지조차 모르고 271일을 살았다면 그건 분명 방임이 아니라 아동학대치사를 한 것”이라고도 적었다.

아울러 청원인은 “본인 스스로 잘 알 것”이라면서 “자신이 아동학대치사도 살인 방조도 아니라는 것을. 부인은 분명히 문자를 보냈죠? ‘병원에 데려가? 형식적으로?’ 이렇게 아주 시원하게 속내를 부인이 당신에게 털어놓더라”라면서 방송 내용을 언급했다.

여기에 덧붙여 청원인은 “당신이 정말 몰랐다면 이 모든 일이 당신이 없는 사이에 부인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면 그렇게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라면서 경찰과 검찰, 법원 등을 향해 올바른 수사와 혐의 적용, 판결 등을 강하게 촉구했다.

또한 안씨와 관련,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학대신고가 세차례나 있었고 정인양의 상태가 나쁜 게 명백한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안씨를 살인공모와 위력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추가 고발했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