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동산 직원이 하도 땅을 사라고 권해서 카드론까지 받아 땅값을 냈습니다. 아내도 용인 땅을 샀습니다.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73번지 지분을 165㎡ 보유한 경기 용인시의 이진구(77) 씨는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씨의 가계 순자산은 마이너스이며 연 가계소득은 2,000만~4,000만 원 사이다. 그는 금토동 산73번지 지분 1,195만 원 등 총 4,000만 원어치의 땅을 샀다.
26일 본지가 금토동 산73번지 지분 매수자 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상당수는 투자금을 회수 못하는 상황을 고통스러워하며 “업체의 허무맹랑한 말만 믿고 투자한 게 화근”이라고 자신을 책망했다. 지분을 사는 데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대출금을 갚느라 너무 버거워 허덕일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기획부동산에서 직원으로 일한 전북 전주시의 A(59) 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5개 땅 지분을 총 1억 2,000만 원어치 샀다. A 씨는 “직원 시절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산 땅이 많다”며 “보험사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1억 2,000만 원을 대출 받았다”고 밝혔다. A 씨는 “낮에는 김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며 “온몸이 쑤시도록 일하지만 빚을 다 갚으려면 까마득하다”고 울먹였다.
7년 동안 기획부동산에서 일한 충남 아산시의 B(59) 씨도 수렁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B 씨는 “일당 7만 원 받자고 뛰어든 게 화근이 됐다”며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땅 한 평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느냐”고 밝혔다. 그는 “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회사 임원들의 설명에 혹하는 마음이 일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며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8개 땅의 지분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한 금액은 1억 5,000만 원인데 이 가운데 절반은 대출이다. B 씨는 “연이율 20%가 넘는 카드론도 받았다”며 “남편과 함께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지만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가족 몰래 지분을 샀다가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판이어서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기 부천시에 사는 C(61) 씨는 “친구 명의로 남편 몰래 지분을 샀다”며 “나 말고도 가족 몰래 산 친구들이 있는데 등기권리증을 숨겨뒀다가 잃어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부동산이 재산 없는 사람들이 소액으로 땅을 사서 돈 벌 수 있는 물건이라고 권유해서 샀다”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순자산 1억 원 이하가 절반…빚 낸 사람도 40%
본지가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가계 사정이 빠듯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계소득이 ‘없다’는 사람은 25%였다. ‘2,000만 원 이하’도 11%였다. 합치면 36%가 가계소득 하위 20%(1,915만 원·2020년 가계 금융 복지 조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가계소득 ‘2,000만~4,000만 원’을 고른 사람도 40%였다. 즉 ‘없음~4,000만 원’ 구간이 76%인 것이다. 이들은 전체 가계의 정중앙(4,652만 원)에 미달한다.
가계 순자산은 ‘1억 원 미만(36%)’이 가장 많았다. ‘마이너스’도 13%였다. 절반이 순자산 1억원 미만인 것이다. 이는 하위 30%(8,884만 원) 내외다. 그렇다고 이들이 20~30대도 아니었다. 순자산 1억 원 미만 26명 중에는 60대(10명)가 가장 많았다. 그 뒤로 50대 6명, 40대 5명, 70대 4명, 80대 1명 순이었다. 빚을 내서 지분을 산 매수자도 40%였다. 이 중 23%는 제2금융권에서 카드론, 보험약관 대출 등을 받았다. 8%는 지인에게 대여했다.
◇‘환불 원해’ 3명 중 2명…42%는 ‘소송하겠다’
매수자 3명 중 2명은 후회하고 있었다. ‘환불을 요청했다’는 36%, ‘환불 요청 계획이 있다’는 28%였다. ‘기타’ 답변 중에도 “환불이 된다면 할 텐데 안 될 것 같다” “판매 직원이 잠적해 요청이 어렵다” 등 환불을 받고 싶으나 포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민형사 소송을 한다는 사람도 42%에 달했다. ‘소송 계획이 없다’는 사람들 중에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혼자서는 버겁다” “할 줄을 모른다” 등 자포자기가 대다수였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매수자의 소득 수준, 직업 상황에서 소송은 쉽지 않다”며 “소송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데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피해 금액을 감안하면 소송을 하기에도 실익이 적다”며 “기획부동산은 이를 알고 악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소송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D(50)씨는 “소송을 걸어서 환불 받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획부동산에 환불을 요구하는 내용 증명을 몇 번 보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경숙(53)씨는 “상담 직원을 포함해 4명을 경찰에 고소했는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며 “상담 직원이 그 사이 외국으로 도피해 기소 중지되면서 민사소송을 추가로 접수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제에 함께 소송할 매수자를 연결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이 알 수 있는 다른 매수자 정보는 등기부등본의 주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기 화성시에 사는 박삼순(63)씨는 “주변에 같이 공유지분을 산 언니들이 많다”며 “누가 고소를 진행한다면 같이 하고 싶으니 연락을 좀 달라”고 말했다.
한 기획부동산 전문가는 “지금처럼 피해자들이 파편화되어서는 소송 진행은 물론이고 여론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며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단체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