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원전 건설 3대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한 것으로 산업통상자원부 내부 문건에서 확인됐다. 특히 ‘탈원전’ 정책의 서슬이 시퍼런 시기였음에도 최신 원자로인 APR-1400 2기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고를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건설하는 방식이 가장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해당 문건이 ‘실무선에서 종결된 아이디어’라고 강조했지만 문건의 작성 경위, 지시 등의 논란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는 1일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원문을 공개했다. 문건은 김 모 산업부 서기관이 2019년 12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530개 파일 중 북한 원전 관련 자료 17개 가운데 ‘180514_북한지역원전건설추진방안_V1.1’이라고 명명된 파일이다.
문건은 ‘향후 북한 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대안에 대한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전제했으나 북한 원전 건설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비교적 상세히 분석했다. 특히 1안으로 ‘북한 금호지구에 (신고리 5·6호기 원전 원자로인) APR-1,400 2기와 사용 후 핵연료 저장고’ 건설까지 적시했다. 2안은 비무장지대(DMZ)에 수출형 신규 노형인 APR 플러스 건설 방안, 3안은 백지화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후 북한으로 송전을 각각 상정했다. 문건은 결론 부분인 검토 의견에 “북한 내 사용 후 핵연료 처분이 전제될 경우 1안이 소요 시간과 사업비, 남한 내 에너지 전환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 있다”고 밝혔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내용으로 봐서 산업부 서기관이 단독으로 검토하고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 등을 “구시대의 유물 정치”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이 문건 작성 경위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산업부 측은 “현재 재판 중인 사안임에도 공익적 가치를 감안, 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자료 원문을 공개한다”며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미·일 공조해 ‘추진 체계’ 구성 방안도 담겨 ... “사업 추진 초반 단계로 보여"
청와대와 정부는 1일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원문을 공개하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실무 차원의 아이디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해당 문건은 각 시나리오별로 장점과 단점을 일목요연하게 비교·분석했고 북한 원전 건설이 국제사회에서도 민감한 문제가 될 소지를 감안해 ‘미국·일본과 공조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등 구체적인 추진 방안과 제계까지 담겼다. 전문가들은 해당 문건이 단순히 산업통상자원부의 국(局) 차원에서 이뤄진 내부 검토가 아닌 나름 현실성 있는 ‘사업 추진 초반 단계’라고 분석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서기관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살펴본 것은 아닐 것”이라며 “어느 선까지인지는 몰라도 (문건 작성) 지시가 있었고 분명 그 자료는 (상부로) 보고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한울 3·4호기 활용 시 사업비 5,000억 절감 가능”
문건은 북한 원전 건설 입지 두 곳으로 △북한 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부지인 함경남도 금호지구 △비무장지대(DMZ)를 적시했다. 3안으로는 ‘남한 내 지역’으로 건설이 백지화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 후 북한으로 송전하는 방식을 들었다. 문건은 각 안의 장단점도 비교·분석하고 있는데 1안(금호지구)의 장점은 ‘ KEDO의 북한 경수로 사업 당시 북한이 희망한 지역으로 신속히 추진 가능’으로, 단점으로는 ‘사용 후 핵연료 통제가 어려워 미국 등 주요 이해 관계자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2안(DMZ)은 ‘핵 물질에 대한 통제가 용이하고 수출 모델의 실증도 가능’한 것이 장점이지만 지질 조사 결과에 따라 건설이 불가능할 수 있으며 북한으로 신규 송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3안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종합 설계와 제작 중단된 원자로 활용이 가능해 사업비 5,000억 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 수정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약으로 삼았다.
문건은 북한 원전 건설 시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처리 문제까지 분석하기도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를 고려해 북한 내에 처분하거나, 남한에서 처분하되 필요 시 해외 외탁 후 재처리, 또는 제3국 반출’ 같은 비교적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서기관 단독으로 작성 불가... 상부 ‘보고됐을 것’”
해당 문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상상력마저 동원된 시나리오’라면서도 일부 방안에 대해서는 나름 현실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학부 교수는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꺼내본 정도”라며 “특히 DMZ 활용은 ‘빈 땅이 있으니 해보자’는 초보적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주 교수도 “DMZ는 ‘상상력이 풍부한’ 수준”이라면서도 “그러나 주기기를 가져다 북한 내에 짓는 것(1안)과 신한울 3·4호기를 활용(3안)해 송배전으로 연결하는 것은 나름 가능성이 있는 안”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문건이 정부 입장대로 ‘내부 검토 의견’은 아니라는 분석이 다수였다. 정 교수는 “사업 추진의 초반 단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 “구시대 유물정치” 야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
야당의 의혹 제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의 문건 공개 이후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를 산업부가 스스로 보여준 것”이라며 국정조사 추진을 거듭 주장했다. 야당은 물론 전문가들도 “더 깊은 혼란 전에 문 대통령이 ‘미스테리 문건’ 진행의 실체를 알려 결자해지하라”하라고 촉구했다.
세종=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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