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과 달리 개인사업자는 사업용 재산과 가사용 재산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개인사업자는 사업용 재산에서 자금을 자유롭게 인출할 수 있고, 사업 명목으로 자금을 과다하게 차입한 후 실제로는 그 차입금을 가사용이나 기타 사업과 무관한 비용으로 사용함으로써 부당하게 필요경비를 공제받을 우려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소득세법 및 그 하위 법령은 개인사업자의 초과인출금에 대한 지급이자를 ‘가사 관련 경비’로 의제하여 사업소득금액 계산 시 필요경비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가사 관련 경비’ 외에도 결손 등 사업 관련 부채의 증가, 가사 외의 사업무관 비용 등 다양한 원인으로 초과인출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초과인출금 지급이자를 일률적으로 ‘가사 관련 경비’로 의제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규정은 조세법률주의 및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위 1심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초과인출금 지급이자 필요경비 불산입의 법령상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되므로 개업의사, 부동산임대업자 등 사업의 특성상 차입금 규모가 큰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부담하는 소득세액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초과인출금 지급이자의 필요경비 불산입에 관한 현행 소득세법 소득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동일한 내용의 소득세법 기본통칙에 대해 대법원이 1990년 경 이미 무효를 선언한 바 있다는 점이다. 당시 대법원은 위 소득세법 기본통칙의 내용이 실질과세원칙에 반하는 동시에 합리성과 타당성이 없고 그 형식에 있어서도 법령상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기본통칙 규정을 무효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세당국은 내용상의 위법은 전혀 시정하지 아니한 채 소득세법 기본통칙에 있던 규정을 소득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으로 옮겨 규정하는 방식으로 그 형식만을 바꾸어 현재까지 무려 30년 동안이나 같은 제도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번 초과인출금 사안이 아니더라도 대법원에 의하여 과세처분 또는 관련 법령의 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과세당국이 근본적인 법률 규정은 그대로 둔 채 시행령 등 하위 법령만을 기술적으로 변경하여 종전의 과세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부동산 세제강화 정책의 경우에도 법률 규정이 아니라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등 하위 법령의 내용이 신설?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규정들이 여기저기 산재돼 있는 탓에 세무전문가들조차 흩어져 있는 부동산 세제 관련 규정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조세는 헌법상 기본권인 사유재산권에 관한 중대한 제한이라는 점에서 기본적 사항은 법률에 규정돼야 하고, 법률의 내용을 통하여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행정입법에 규정될 내용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납세자의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 역시 확보돼야 한다. 따라서 조세에 관한 행정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행정입법의 내용이 헌법과 법률에 반하지 않는지, 법률 규정 자체의 문언에 의하여 행정입법으로 규정될 사항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지,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잠탈하거나 납세자의 예측가능성?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과세편의적 행정입법은 아닌지 등에 관한 신중한 검토와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