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도 금융위기도 '전염병'입니다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
애덤 쿠차르스키 지음, 세종서적 펴냄
총기 폭력사건 등 각종 사회현상
수학 도구 삼아 공통패턴 찾아내
전염병 매커니즘과 '닮은꼴' 입증


R값(감염재생산지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국면에서 흔히 쓰이게 된 개념 중 하나다. 감염병 확진자 한 명이 감염시키는 사람 수를 뜻하는데, 예를 들어 확진자 100명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돼 추가로 70명이 감염됐다면 R값은 0.7이라는 식이다. R값이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전영병의 확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확산 속도를 억제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감염의 기회를 줄이면 R값은 낮아지고 당연히 확진자 수도 줄게 된다.



1910년 로날드 로스가 만든 ‘말라리아 감염 모형’. /사진제공=세종서적

사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우리 사회는 ‘전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일상에서 급속도로 퍼져가는 가짜뉴스도 따지고 보면 전염병 확산과 유사점이 많으니 말이다.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애덤 쿠차르스키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교수는 신간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에서 가짜뉴스는 물론 폭력 사건과 금융위기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 현상이 퍼져나가고 잦아드는 과정이 전염과 비슷한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전염병의 매커니즘을 통해 이들 현상을 분석한다.


그러려면 우선 감염병 확산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저자는 영국의 열대병학자 로날드 로스가 1910년 말라리아를 연구하며 만든 감염 모형으로 전염의 원리를 설명한다. 당시 로스의 주장은 ‘모기를 모두 박멸하지 않고 의미 있는 수준으로만 줄이는 데 성공해도 말라리아의 확산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기를 통해 R값을 관리하는 셈이다. 전염이 발생하려면 모기 한 마리가 말라리아 감염자를 물어야 하는데, 로스의 모형에 따르면 사람을 물 수 있는 모기는 4마리 중 1마리 꼴이다. 그런데 말라리아 기생충의 번식에 필요한 시간만큼 모기가 생존할 확률이 낮으므로 실제로는 모기가 4만 여 마리 있어도 추가 감염자는 1명밖에 늘지 않는다. 여기에 회복과 감염이 상쇄되는 과정, 모기 밀도의 임계치 등을 감안하면 마지막 한 마리의 모기까지 없애지 않아도 말라리아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시의 폭력사건 전염 역학조사를 토대로 만든 50건의 폭력 확산 시뮬레이션. 점은 총격 사건, 회색 화살표는 후속 폭력사건의 전파 과정을 나타낸다. /사진제공=세종서적

이러한 전염병 차단의 원리는 폭력 사건과 같은 사회 현상이 확산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 차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시는 연쇄적인 총기 폭력사건을 해결하는데 천연두 퇴치 메커니즘을 썼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아프리카에서 전염병을 연구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게리 슬럿킨은 폭력과 전염병 사이에 비슷한 부분을 찾아낸다. 지도와 그래프를 보며 폭력의 동선을 살펴보던 그는 지도에 나타난 군집화가 방글라데시의 콜레라 지도와 닮았더라는 점을 발견한다. 천연두를 방역할 때 역학자들은 새로운 감염 사례가 나타나면 감염자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모두 백신을 접종하는 ‘포위 접종’을 구사한다. 시카고시는 폭력 사건도 천연두와 마찬가지로 전파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백신을 접종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연구에 근거해 ‘폭력 구제’라는 집단을 둬서 사건 초반 용의자 주변인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폭력 확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



19세기 역학자 존 스노가 그린 영국 런던 소호 지역의 콜레라 지도. 미국 시카고시는 당시 폭력의 전염 흐름이 콜레라 확산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제공=세종서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과정도 전염과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책은 금융 관련 논문을 여러 편 쓴 생태학자 로버트 메이가 전염병 확산과 주가 거품 확산의 명백한 유사성을 짚어낸 연구를 인용한다. 메이는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연계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 미국의 집값 하락으로 연쇄적으로 손실을 입었던 과정을 예로 들며 “금융 자산의 상승과 이어진 몰락은 홍역 혹은 다른 전염병 아웃브레이크의 전형적인 성쇠와 모양이 완전히 똑같다”고 했다.


가짜뉴스로 대표할 수 있는 각종 소문, 루머의 확산 과정은 질병과 더불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전염 사례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천차만별인데, 책은 가짜뉴스가 진짜 소식보다 더 넓고 빠르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는 미 MIT 연구진의 연구를 전한다.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서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사람은 통상 팔로워 수가 적은데, 결국 가짜뉴스는 전파 기회가 많아서라기 보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공유할 확률(전파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전파된다는 전염 원리로 설명된다. 특정 전파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만 해도 가짜뉴스 확산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전염을 의식하는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 감염병 연구 과정에서 갈고닦은 아이디어 상당수가 다른 유형의 아웃브레이크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러한 분석에는 대량의 데이터 확보가 필수이며, 이는 개인정보보호 등 여러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저자는 데이터 활용 여부의 판단을 당사자에게 맡기고 대중이 논쟁에 참여하게 하는 등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만9,0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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