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친구 몇몇과 모여 근황을 주고받는데 A가 수도권 인기 지역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말로만 듣던 ‘로또 청약’ 당첨자라니. 시세 차익을 떠나 대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해온 그에게는 다시 잡기 어려울 내 집 마련의 기회였다.
부럽다며 축하가 쏟아지는데 A의 얼굴이 어두웠다. 어림도 없는 가점제 대신 추첨으로 뽑는 40평대에 청약을 도전했지만 분양가가 9억 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른바 ‘흙수저’에 수억 원을 대출 없이 마련할 수 있는 현금 부자도 아닌 A는 신용대출, 가족 대출, 지인 대출과 기타 등등을 끌어모았다. 다행히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로펌에서 일주일에 70~80시간을 일하는 막내 변호사다. 자산도 저녁 있는 삶도 없지만 신용대출은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3개월마다 1억 원씩 돌아오는 중도금 일정에 A는 그야말로 “등골이 휜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투기 수요를 차단해 집값을 잡겠다”며 분양가가 9억 원 넘는 주택에 대한 중도금 집단 대출을 막으면서부터다. 그 취지만 보면 A와 같은 사람들도 ‘나쁜 투기꾼’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물론 집값은 더 날아올랐다.
그 이후로 추가된 대출 규제는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하지만 체감하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규제는 그중에서도 최근의 고소득자 신용대출 규제다. 소득이 많을수록 사유를 불문하고 돈을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자금 일정만 망가뜨린 것이 아니다. 망가진 건 금수저가 아니어도, 당장은 자산이 없어도 열심히 일해서 소득과 신용을 올리면 필요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상식과 희망이다. 이제 수많은 A들은 은행 대출도 받지 못하게 됐다.
이들이 2금융으로 밀려나는 ‘풍선 효과’가 정말 없느냐고 묻자 정부 한 관계자는 “금리 차이가 크고 대출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다 못 받았다고 카드사·캐피털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이와 달리 지난해 9월 카드론을 새로 받은 고신용자 비중은 두 달 만에 네 배(0.2→0.8%)로 늘었다. 이 소수점 속에는 A도 있을지 모른다.
/빈난새 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