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달라는 자식들…어쩌다 新 등골 브레이커 됐을까[백주원의 리셀]

10대 명품 소비 커져…SNS 대중매체 영향
모바일 커머스 등장으로 명품 접근성도 좋아져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 유통·패션 시장이 확 바뀌었다는 얘기 많이 들으셨죠. 그런데 기업들이 왜 손을 잡는지, 적자인데도 사업을 키우는 이유는 무엇인지, 요즘 트렌드는 무엇인지 뉴스를 봐도 아리송할 때가 종종 있으셨을 겁니다. 앞으로 ‘백주원의 리셀(Resell)’에서는 시시각각 급변하는 업계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쏙쏙 재정리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등학생 18년 인생 첫 명품 구찌, 알렉산더 맥퀸, 톰브라운 하울해요”


“15살인데 엄마가 시험 잘 봤다고 프라다 클러치 사줬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백, 수천만 원대의 명품은 경제력이 있는 30~40대 이상이 주로 찾는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요즘 유튜브에서 ‘명품 하울’, ‘명품 언박싱’이라는 키워드만 검색해보면 10대들도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영상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유행처럼 퍼졌습니다.


유행은 곧 소비를 불러온다고 10대들 사이에서 부는 명품 열풍에 부모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한 아웃도어 브랜드 열풍에서 시작한 ‘등골 브레이커’라는 용어가 명품 시장으로 옮겨간 거죠. 온라인 명품 커머스 플랫폼 ‘머스트잇’에 따르면 지난해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는 구찌, 알렉산더 맥퀸, 스톤 아일랜드였습니다. 모두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들입니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의 명품 소비 현상에는 유튜브나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드라마 등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봤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또래 문화에 쉽게 영향을 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또래 연예인이 명품을 입고 나오고, SNS에서 친구들이 명품을 샀다는 이야기가 자주 목격되면 ‘나만 명품이 없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과도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단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정말 다일까요?



신세계백화점 부산센텀시티점 내 구찌 매장 전경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화·심리적 요인 외에 수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한 모바일 e커머스(전자상거래) 산업과도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주로 오프라인 백화점에서 소비가 이뤄졌던 명품을 모바일 플랫폼에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특히 ‘요즘 10대들은 모바일이 기본이라 오히려 PC 키보드 치는 걸 어려워한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모바일에 익숙한 10대들이 손안에서 명품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인공지능(AI)으로 최저가 명품을 찾고, 짝퉁일 경우 200% 보상해주는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온라인에서 명품을 찾는 수요는 10대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에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절반가량이 온라인 채널을 통해 명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17~24세의 경우 60% 이상이 온라인 채널을 이용했죠.



온라인 명품 커머스 플랫폼 머스트잇(왼쪽)과 카카오톡 선물하기 내 명품 카테고리/모바일앱화면캡처

그 결과 지난해 명품 전문 플랫폼들도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머스트잇에서는 69만 건, 총 2,500억 원 상당의 명품이 거래됐습니다. 이는 지난 2019년 거래 건수 42만 건, 거래액 1,500억 원과 비교해 약 50%씩 많아진 수치입니다. 이 중 거래액 기준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에서 지난해 9%로 두 배 이상 커졌습니다. 커진 시장 규모만큼 10대들의 명품 소비도 늘었다는 거죠.


명품 전문 플랫폼 외에도 우리가 자주 쓰는 주요 앱들에서도 쉽게 명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네이버쇼핑은 뷰티 브랜드 중 상위 브랜드만 엄선한 ‘럭셔리뷰티’ 카테고리를 새롭게 신설했습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는 2019년 8월 디올을 시작으로 구찌, 프라다, 버버리, 샤넬 등 100여 개 이상의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습니다. 특히 카카오톡의 명품 선물하기에서 패션·잡화 부문의 지난해 거래액은 전년 대비 480%, 화장품 부문은 143% 급성장했습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올라온 구찌 상품들/웹페이지 캡처

모바일 중고 거래 플랫폼의 인기가 10대들의 명품 소비문화에 한몫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물건을 샀다가 되파는 ‘리셀(Resell)’이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되면서 명품 구매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500만 원에 명품을 산 뒤 450만 원에 되팔면 되니까요. 오히려 50만 원만 주고 500만 원짜리 명품이 주는 만족감을 느꼈다고 생각하죠. 한정판 명품은 실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되팔 수 있어서 새로운 재테크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 청소년들은 소비에 대한 가치 정립이 안 돼서 그런 것이다’, ‘청소년들의 모방 심리 때문이다’, ‘SNS나 드라마에서 유행하기 때문이다’ 등으로 10대들의 명품 소비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우리 산업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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