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군사합의가 진짜 이적행위…文정권, 北 평화 파괴 능력만 키워줘” [청론직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한국, 대북제재 해제 너무 서두르면 한미동맹 균열 우려
-‘패권 세력’ 중국 견제 위한 우리의 분명한 선택은 미국
-한일, 과거사 얽매이지 말고 동북아 균형 위해 손잡아야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전문가와 관료 말 듣고 소통했는데
-‘北 원전 독자적 검토했다’는 산업부 말 믿을 사람 없을 것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포럼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북한의 한반도 평화 파괴 능력만 키워줬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를,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집권 이후 4년 동안 북한의 한반도 평화 파괴 능력만 키워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를 빨리 해달라고 너무 조르면 한미 관계가 삐걱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중 충돌 속에서 한국은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중국 견제를 위한 필수적 동반자이므로 한일 양국이 과거사에 얽매이기보다는 중국의 팽창이라는 더 큰 재앙을 막는 데 집중할 것을 권했다. 또 ‘북한 원전’의 이적성 논란과 관련해 “그보다는 오히려 남북 군사 합의와 대북전단금지법 등이 현 정부의 진짜 이적 행위라고 지적하는 게 옳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차에 들어섰다. 그동안의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마디로 낙제점에 가깝다. 성공한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점잖게 말해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실력이 너무 낮고 굉장히 실망스럽다. 지난 20년만 놓고 본다면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존재감이 국제사회에서 쪼그라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미 관계, 한중 관계, 한일 관계 등이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또 있었나 싶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평가해 달라.


△현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가졌지만 북한의 한반도 평화 파괴 능력만 키워준 결과를 초래했다. 문 정부가 요란스럽게 벌인 일은 많지만 성과로 내세울 것이 없다. 평화는 지키기 어려워졌고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약화시킨 것이 외교안보 정책의 초라한 성적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한미 동맹관과 대북 정책은 달라질까.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중시하므로 방위비 협상 등의 현안은 해결이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미의 대북 공조가 잘 될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제재 해제가 우선인 반면 바이든 정부는 제재 이행에 무게를 둔다. 또 문 정부는 임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 할 것이지만 바이든 정부는 시간에 쫓길수록 협상에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한미 간에 파열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한국이 대북 제재 해제를 빨리 해달라고 너무 조르면 미국과의 공조가 삐걱댈 수 있다. 더 큰 불협화음은 북한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민주당 소속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서 인권은 핵심 가치다. 문재인 정부는 유독 북한의 주민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미국과 다른 편에 선 한국은 북한 인권 문제에서 부딪히게 돼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오승현 기자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으로 보는가.


△최소한 트럼프보다는 반중(反中) 정책에서 더 강할 것이다. 트럼프는 말로만 반중을 외치고, 표를 의식해서 미국 유권자의 반중 정서를 노린 쇼만 한 사람이었다. 트럼프는 되레 반중의 기초를 무너뜨렸다. 반중의 핵심인 동맹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동맹의 반중 경제 기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시켰다. 동맹에 대해 미국을 등쳐먹는 기생충으로 취급한 것도 문제이지만 동맹의 중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TPP를 무너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지역 정세를 조성한 잘못이 크다.


-그러면 미중 격돌이 더 격해질까.


△바이든은 중국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도 경쟁하고 싸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중이 약화된 것 같겠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가장 두려워할 한미일 공조, 미일 동맹 강화에 역점을 둘 개연성이 크다.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TPP를 다시 살린다면 아시아 동맹국들과 중국의 디커플링이 더 쉬워진다. 중국에 신세질 일이 줄어드는 것이고 중국의 압박을 거절하기 한결 용이해지는 것이다.


-미중 격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대한민국의 안보와 생존 위협이 어디서 올 것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위협은 늘 패권 세력으로부터 왔다. 20세기 전반의 동아시아 패권 세력이 일본이었다면 앞으로는 중국이다. 우리의 21세기 실존적 위협은 중국에서 온다. 따라서 우리의 외교 전략의 핵심 과제는 중국의 패권적 횡포를 어떻게 견제하고 안보를 지키느냐이다. 지금 미국이 중국 견제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이해가 미국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취할 선택은 자명하다.


-한일 관계 악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국익에 가장 해로운 것은 중국 팽창으로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물론 중국 팽창을 막을 최종적 카드는 미국이지만 미국이 전략적 필요 때문에 중국과 부딪히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이 때 중국의 횡포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과의 과거사에 얽매여서 앞으로 더 큰 재앙을 막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오승현 기자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한 산업통상자원부 문건으로 ‘이적 행위’ 논란이 일고 있는데.


△산업부가 독자적으로 그런 검토를 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건 서두에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써놓은 것도 훗날 책임질 일이 생길 우려 때문일 것이다. 다만 검토 단계의 일을 이적 행위로 보는 것은 무리다. 정책 결정 전의 검토만으로 이적 행위라 몰아붙이면 야당이 나중에 집권당이 되고나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야당이 맥을 잘못 짚었다는 얘긴가.


△이 일은 어차피 외교 담당 부서에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국제법과 제도를 잘 모르고 제재가 해제되면 가능한 줄 알고 불가능한 일을 검토한 것이다. 비핵화 완료 전에 북한 원전 건설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5~6가지 된다. 야당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진짜 이적성을 지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진짜 이적 행위는 무엇인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2조1항에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것은 한미 연합 훈련을 항의할 수 있는 권리를 북한에 준 셈이다. 같은 해 9·19 군사합의서 1조3항에서는 북한에 대한 항공 정찰을 서부 지역은 군사분계선에서 20㎞, 동부 지역은 40㎞ 이내에서 못하도록 근거를 만들어줬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장사정포나 단거리 전술지대지 미사일로 우리를 기습 공격하려 할 때 우리가 정찰을 통해 사전에 감지할 수 없게 된다. 북한에 전단을 보낼 수 없게 법을 만든 것도 적을 이롭게 한 행위다.


-대북전단금지법에 이적성이 있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부정한 것 자체가 큰 문제다. 북한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우리가 막는 것이다. 김정은의 폭압 체제를 더 강화시켜 주고 더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2,500만 동족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가능성을 줄이는 잘못된 법이다. 결과적으로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폭압 체제를 지원하는 법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이적 행위다.


-최근 미국 일부에서 ‘북한 붕괴론’이 나온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등이 그런 주장을 하는데.


△최근 북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사회 기강 다지기에 나선 것이나 경제 형편 등 불안 요인이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있지만 북한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건 성급하다. 신정(神政) 체제나 다름없는 북한은 정책 실패나 경제 상황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체제 붕괴는 동유럽에서 그 직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듯이 어디에서나 단정할 수는 없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오승현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6자 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는데 그때는 문재인 정부와 달랐나.


△지금 정부를 ‘노무현 시즌 2’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게 더 많다. 그때도 운동권 출신이 청와대 참모로 대거 들어갔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전문가와 관료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진영 논리나 선거의 유불리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 국익에 최선인지 판단하면서 폭넓은 시야로 정책을 결정했다. 내가 6자 회담 수석대표로서 청와대 참모들과 정반대 얘기를 해도 노 전 대통령은 늘 경청했었다.


-요즘 청와대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대통령 앞에서 관료들이 주눅 들지 않고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생각을 바꾼 일이 제법 있었는데 지금은 문 대통령에게서 퇴짜 맞고 왔다는 얘기만 들린다. 대통령이 듣기 싫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참모들이 입을 닫게 되고 정책이 잘못 결정될 수 있다.


-정치권은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제대로 대응할 역량을 갖고 있는가.


△국제적 안목과 전략적 사고가 많이 부족하다. 국내 정치가 소란스럽더라도 대외 전략을 정쟁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국익을 기초로 초당적으로 임해야 안보를 튼튼하게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아무리 싸우더라도 당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외교안보 정책의 큰 틀이 달라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긴 안목을 갖고 국익을 위해 눈앞의 진영 논리를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




195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고와 부산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경수로사업지원단 국제부장과 국제기구정책관, 주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를 거쳐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부 2차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2013년부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고, 최근 유튜브 채널인 ‘천영우TV’를 운영하면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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