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약칭 AZ)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효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신 개발자가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의 대학과 제약 회사여서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유럽의약품청(EMA)과 EU 집행위원회가 노인을 포함한 만 18세 이상 연령층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승인했지만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 등 여러 EU 회원국들은 65세 이상 노인을 접종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했다. 예방 효능을 보는 임상 시험 참가자 가운데 노인의 비중이 7.4%에 불과하고 노인에 대한 효능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유럽과 달리 변이가 더 심한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B.1.351)가 대유행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발 더 나아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을 보류했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의 95%가 B.1.351인데 2차 접종 15일 이후 중증 환자 발생 예방 효능이 22%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이 백신을 1차 접종한 지 15일 이후 경증·중등증 환자 발생 예방 효능이 73% 수준으로 양호했는데 B.1.351에는 ‘물약’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1,765명(중앙 연령 31세)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 시험 결과여서 신뢰성·유의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다.
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최근 영국 등에서 진행된 임상 3상에서 1차·2차 접종 간격을 12주 이상 띄우면 유증상 환자 예방 효능이 82.4%로 올라가고 6주 미만일 때 54.9%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처럼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이 아니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12주 간격을 두면 1차 접종 인원을 당초보다 크게 늘릴 수 있다.
다만 EU 주요 회원국과 남아공의 움직임은 1분기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 명분을 들여와 고위험군에게 접종하려는 우리 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백신 우선 접종 대상인 노인, 특히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요양 병원, 요양원의 노인과 직원들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우선 접종하겠다는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현재 각 제약사가 직접 공급하는 백신의 국내 도입 시기는 존슨앤드존슨의 ‘얀센 백신(600만 명분)’과 모더나 백신(2,000만 명분)은 2분기부터, 화이자 백신(1,000만 명분)은 3분기부터로 잡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을 앞두고 안전성·효과성 검증자문단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 회의를 열었는데 노인 접종 문제는 오히려 한발 후퇴했다. 노인을 접종 대상에서 제외하는 EU 회원국들이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식약처는 결국 EMA처럼 18세 이상 모든 연령층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길만 터주고 실질적인 노인 접종 문제는 질병관리청에 미루기로 했다. 노인층이 임상 시험 참가자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임상 결과가 이달 말쯤 발표돼야 논란이 잠재워질 모양이다.
아쉬움이 있다. 중앙약심은 백신에 대해 보다 전문성을 가진 검증자문단보다 후퇴했고 보다 ‘정치적’ 결론을 냈다. EU나 영국 의약품 허가 당국은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전문가들의 의견과 그 근거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상하게 밝힌다. 하지만 식약처는 지나치게 ‘보안’과 여론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정부는 1분기에 의료진과 요양 병원 등의 고령층, 2분기에 노인, 3분기에 18∼64세 성인 등의 순으로 오는 9월까지 1차 접종을 마치고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미국 임상 시험 결과에 따라 흔들릴 수도, 안 그럴 수도 있다. 노인의 예방 효능이 ‘턱걸이’ 수준이라면 논란은 여전하고 접종 참여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위험에 대비해 최근 90%대의 높은 예방 효능을 가진 것으로 발표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도 정부의 새 선택지에 올리고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해 국민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임웅재 보건의료선임기자 jaelim@sedaily.com
/임웅재 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