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폐와 주화에 이어 디지털 화폐(CBDC)도 법정통화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중앙은행인 한은이 공공재로 디지털 지급 결제 수단을 제공하고 민간 가상 자산과 외국의 디지털 화폐로부터 통화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올해 CBDC 발행을 가상 환경에서 시험하고 한은법 등 관련 법률 및 제도 개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한은은 8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한 정순섭·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이종혁 한양대 교수의 보고서를 내부 검토한 후 공개했다. 한은이 CBDC 시스템에 대한 연구에 들어간 뒤 보고서를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CBDC는 기존 통화 법제상 ‘법화(法貨)’의 지위를 갖고 CBDC 발행도 한은의 목적·업무 범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 발행 화폐는 현행 한국은행권(지폐)과 주화(동전)로 돼 있고 CBDC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한은법을 개정해 CBDC 발행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연구진은 특히 CBDC는 현금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져 교환이 가능하나 비트코인 등 “가상 자산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구분했다. CBDC는 전자적 거래를 위한 디지털 화폐지만 중앙은행의 독점적 발권력에 의존하는 만큼 발행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현금과 1 대 1 교환이 안 되는 가상화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CBDC의 발행과 유통은 한은이 책임진다. CBDC 발행 방식으로는 기존 현금과 교환이 우선 고려됐고 한은이 직접 이용자에게 발행하거나 은행 등 금융기관을 중개 업체로 두고 이용자에게 교부하는 두 가지가 제시됐다. 그러면서 한은이 CBDC 유통을 직접 할지,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할지에 따라 금융업과 상거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또 CBDC 위변조를 처벌하고 압류·취득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을 위해 형법·민법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은행 등이 CBDC로 보유할 고객 예금에 대해서는 현행 지급준비금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이번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CBDC와 관련한 법률·제도적 정비안을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연내 CBDC 도입에 대한 ‘파일럿 테스트(모의시험)’를 가상 환경에서 실행하기로 했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